“오아시스마켓이 생활협동조합(생협) 명칭을 도용해 지난 30년간 진짜 생협이 쌓아온 사회적 신뢰와 질서를 망가뜨리고 있다. 오아시스 간판에 생협 명칭을 쓰는 것은 명백한 불법인데, 이것을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한 것은 조합원과 생협 전체를 기만하는 것이다.”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아이쿱생협에서 열린 5대 생협연합회(두레생협, 대학생협, 아이쿱, 한살림, 행복중심생협)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우리생협과 오아시스마켓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아이쿱생협 강윤경 팀장은 “10년 간 생협을 사칭해온 오아시스가 이제는 사실 관계마저 왜곡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픽=이은현

◇ 생협 外 ‘생협 위탁판매자’ 명칭 사용 규정은 없어

새벽배송 전문업체 오아시스마켓을 운영하는 오아시스의 ‘생협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아시스의 ‘생협 사칭’을 문제 삼은 5대 생협(두레생협·대학생협·아이쿱·한살림·행복중생협)이 오아시스마켓 오프라인 매장의 ‘우리생협 위탁사업자’ 표기에 대해서도 위법 가능성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는 올해 6월 안에 전국 오프라인 매장 간판에서 ‘우리생협’ 문구를 빼겠다고 밝힌 상태다. 해당 문제를 두고 10여년 간 다퉈왔으나, 기업공개(IPO)를 앞둔 만큼 갈등의 소지를 아예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생협 위탁판매자의 생협 명칭 사용에 관한 합법 여부다. 현행법상 ▲생협의 정의 ▲생협 명칭을 쓸 수 있는 자에 대해서는 명시돼 있다. 생협법 제4조2항에 따라 설립된 조합·연합회 또는 전국연합이 아닌 자는 ‘생협’이라는 문자를 사용하지 못한다.

문제는 기존 생협의 제품을 위탁 판매하는 대리점, 가맹점 등이 ‘00생협 위탁판매자’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행법에 명시된 규정이 전혀 없다. 판매 권한의 위탁 및 위임은 사적 계약의 문제이며 공법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오아시스(옛 우리네트웍스)는 경기도 광주시에 본사를 둔 ‘우리생협’ 경영진이 2011년 당시 ‘우리네트웍스’ 이름으로 설립한 회사다. 현재 지어소프트(051160) 가 지분 68.95%를 소유한 자회사로 물적분할했다. 상법상 주식회사다.

오아시스는 2013년 오프라인 매장을 연 뒤 우리생협과 정식 계약을 맺고 위탁판매를 시작했다. 이때 오프라인 매장 간판에 ‘우리생협’이라는 문자를 적시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오아시스 측은 당시 간판 외 매장 입구 등에 ‘우리생협 위탁판매점’이라는 사실을 100% 명시한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5대 생협은 이 역시 위법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뒤늦게 간판에서 생협을 제외키로 한 건 다행이지만, ‘생협 위탁판매점’이라는 문구를 계속 사용해 여전히 소비자의 판단을 흐린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생협이 사실상 대리점 등의 생협 문구 사용을 독려한 만큼,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제12조에 따라 우리생협도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생협 측 법률 담당인 조제희 변호사는 “오아시스가 생협 명칭을 쓴 것에 대해 우리생협이 사실상 명칭을 빌려주고 적극 관여했다”며 “질서위반행위규제법상 우리생협에 대해서도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자체나 감독기관들이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생협의 위탁판매점인 일부 오아시스마켓 오프라인 매장의 간판. '우리생협'이라는 명칭이 함께 적혀 있다. /우리생협 홈페이지 캡처

◇'생협’ 포함한 문구 못 써 vs ‘위탁’ 넣으면 가능...판결 해석 ‘제각각’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건 사법부 판단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2012년 우리생협에 제4조 2항 등에 관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조합원인 개인사업주가 생협의 대리점 및 위탁판매점을 운영하며 생협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현행법 위반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우리생협이 경기도의 해당 처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대법원 판결에서 경기도가 최종 패소했다.

우리생협은 “최고 사법부인 대법원이 이미 경기도의 시정 조치를 무효화했고 우리생협이 승소했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아이쿱 등 다른 생협들은 애초에 경기도가 ‘법 위반 주체’를 잘못 설정했다며 ‘예정된 패소’였다고 반박했다. 생협법 제4조 2항에 따라 이미 생협으로서 문제가 없는 우리생협은 생협법 위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경기도가 시정명령 조치를 우리생협이 아닌 오아시스에 내렸어야 한다는 의미다.

2016년 12월 수원지방법원은 오아시스(당시 우리네트웍스)가 홈페이지에 위탁판매자인 사실을 표시하지 않고 ‘우리생협’ 또는 ‘우리협동조합’으로만 표시했다며 생협법 4조 2항 위반 혐의로 25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항소심에서 과태료를 100만 원으로 낮췄다.

생협 명칭을 사용한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지만 ▲우리생협과의 계약에 따라 우리생협 물품을 판매하다가 발생한 일이라는 점 ▲대리점 또는 위탁판매점 지위에서 우리생협 물품을 판매하는 것 자체는 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한 판결이다.

오아시스는 이를 근거로 ‘우리생협 위탁판매점’이라고 표시하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당시 법원이 판결문에 “물품 판매를 목적으로 개설한 홈페이지에 대리점 내지 위탁판매점인 사실조차 표시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우리생협’ 또는 ‘우리협동조합’이라고만 표시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김수희 오아시스 변호사는 “논란의 소지 자체를 없애기 위해 상반기 내로 간판에서 생협 문자를 제외하고 오아시스로 통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오아시스마켓은 서울, 수도권 등에 운영 중인 55개 매장 입구 벽면 등에 ‘우리생협 위탁판매점’이라는 문구를 명시하고 있다.

◇공정위 “생협 사용 자체는 부적절...이후 판단은 사법의 영역”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명확한 공식 입장을 표하지 않고 있다. 개별 사안에 대해 확답을 할 수 없는 위치라는 이유다. 법령 해석 권한과 지도·감독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공법에 명시된 바 외의 각 사례는 법원이 판결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일단 공정위는 우리생협이 오아시스 등 위탁판매점에 대해 ‘생협’ 또는 ‘생협 위탁판매점’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위탁판매를 명시한 경우라도 ‘생협’이라는 문구가 들어가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해석이다. 다만 오아시스가 생협 간판을 내린 이후 다른 생협이 ‘생협 위탁판매점’ 명시를 문제 삼을 경우,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공정위 소비자정책과 관계자는 “법원이 이 문제와 관련해 오아시스 측에 위법 혐의로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 등을 고려할 때 공정위도 ‘생협’이 들어가는 문구를 사용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면서도 “공법에서 명시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이후에 사법부 판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아시스는 추후 위탁판매점 고시 여부를 논의 중이다. 해당 문제가 계속 제기될 경우 고객 신뢰는 물론 우리생협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오아시스마켓 주엽역점. 신규 매장의 경우 ‘생협’이란 글자 없이 OASiS만 표기했다. /오아시스마켓 제공

◇3천원 vs 5만원...조합비 두고서도 ‘진짜 생협’ 논쟁

현재 아이쿱생협 등은 가입출자금 5만원과 이용출자금 1000원을 비롯해 매월 1만원 상당의 조합비를 받고 있다. 조합원은 일반가보다 최대 40%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영리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자가 직접 출자금과 조합비를 내고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우리생협은 최초 조합원 가입비 3000원만 내면 조합원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오아시스도 “우리생협 위탁판매점의 지위에서 조합비를 다른 생협 조합비의 평균 10분의 1로 줄였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5대 생협은 오아시스가 자본력을 바탕으로 ‘오아시스 생협’ 매장을 확대해 소비자의 혼동을 야기한다고 봤다. 생협이 아닌 주식회사가 생협을 사칭하고, 저렴한 상품 가격과 가입비를 내세워 조합원 및 고객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아이쿱생협 오귀복 상무는 “실제 생협은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출자금을 모아 만든다는 점에서 공적 성격을 보호받아야 마땅하다”며 “생협이 아닌 오아시스가 생협 명칭을 써서 소비자를 속이고 오랜 시간 쌓아온 생협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 본질”이라고 했다.

김수희 오아시스 변호사는 “소비자 분들의 큰 지지를 통해 성장해 온 만큼 가격 경쟁력과 품질 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