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 시내 중심에 위치한 포르투 시청 앞은 지하철 신규 노선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포르투 시내와 보아비스타, 가이아 등 외곽 지역을 연결해 하루 3만 명 이상의 신규 승객을 수용하는 것이 목표다. 도시 연결성이 높아지고 관광도 더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같은 날 포르투 명소로 꼽히는 렐루서점 앞에는 전 세계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다. 미국에서 가족 여행을 온 관광객 미아 앤더슨(18)씨는 “해리포터의 팬인데 호그와트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면서 “포르투 전체가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다.
최근 포르투갈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 꾸준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3년간 포르투갈의 경제성장률은 2021년 5.7%, 2022년 6.8%, 2023년 2.3%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유럽연합(EU)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6.0%, 3.5%, 0.5%였다.
포르투갈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과 더불어 막대한 재정 적자와 공공 부채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국가 부채는 2012년 국내총생산(GDP)의 129%에 달했고, 재정 적자는 GDP의 9.8%(2009년)까지 치솟았다.
‘PIGS’로 불리던 이들 국가는 EU의 구제 금융 프로그램에 맞춰 민·관 양쪽에 모두 걸친 강력한 구조 조정을 시행했다. 국민의 강한 반발과 저항이 있었지만, 이로 인한 체질 개선의 성과는 분명하다는 평가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최근 발간한 ‘남유럽 3개국 최근 경제회복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포르투갈을 포함한) 남유럽 3국의 사례는 친시장 기반의 구조개혁 정책이 경제회복을 견인했음을 보여준다”며 “한국 경제에도 참고할 만한 벤치마킹 사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포르투갈 경제 회복… 엔데믹 이후 관광이 주도
코로나19 엔데믹(전염병 종결) 이후 포르투갈을 찾는 전 세계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경제 회복을 주도하고 있다. 역사적 경관과 서유럽과 비교해 비교적 저렴한 생활비가 장점이다. 또 외국인 임시 체류 비자를 신설하는 등 포르투갈 정부가 방문객 유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 게 효과를 봤다.
포르투갈 관광청 등에 따르면 2023년 포르투갈을 찾은 관광객은 약 3000만명에 달한다. 관광 수입은 약 250억 유로(약 37조436억원)에 달한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기록을 뛰어넘은 수치로, 지난해 8월 기준 관광 수입은 41억 유로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현재 관광 산업은 포르투갈 GDP의 약 16.5%를 차지한다. 2023년 경제 성장률 2.3% 중 절반가량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정부는 리스본 제2 공항 신설에 나서는 등 관광 인프라 정비에 나섰다.
다만 관광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주택 임대 시장 가격 상승 등 부작용도 초래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네덜란드 병’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네덜란드 병은 특정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지면서, 다른 산업들이 경쟁력을 잃는 현상을 뜻한다. 1959년대 북해 유전의 발견으로 네덜란드 경제가 일시적 경제 호황을 누렸다가, 통화 가치 상승과 물가 급등으로 국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1970년대까지 침체를 겪어 생긴 말이다.
◇ ‘유럽 스타트업 허브’로 거듭난 포르투갈
경제 회복세를 이끄는 또 다른 한 축은 스타트업 붐으로 대변되는 경제 혁신이다. 저렴한 물가, 우수한 디지털 기반 시설과 세제 혜택, 스타트업 비자 혜택 도입 등을 시행하면서 포르투갈은 유럽의 ‘스타트업 허브’로 거듭났다. 외국 자본과 인재도 끌어모으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 집계에 따르면 2022~2023년 포르투갈엔 해마다 9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이뤄졌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103억달러(약 13조7000억원)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2020년의 40억달러(약 5조3000억원)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포르투갈 내 스타트업도 2016년 2193개에서 2023년 4073개로 증가했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은 7개로 늘어났다. 리스본에서 열리는 매년 열리는 ‘웹 서밋’은 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로 꼽힌다.
스타트업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고용에도 긍정적 효과를 준다. 일례로 민관 협력 스타트업 지원 시설인 ‘스타트업 포르투’는 지역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 기관에서 소개하는 성공 사례는 포르투 고유 레시피를 사용한 수제 맥주 회사 ‘콜로서스 크래프트 브류어리’, 포르투 문화 자산과 숙박업을 결합한 ‘갤러리 호스텔’ 등이다. 뿐만 아니라 소아 물리 치료를 제공하는 ‘피시오 트림 트림’이나 지속 가능한 기업인 ‘플로우코’ 등은 포르투를 넘어 포르투갈 전역과 유럽 등으로 진출한 상황이다.
스타트업 포르투 관계자는 “민관 협력을 통해 포르투갈 창업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포르투갈 스타트업 생태계는 벤처 캐피탈 투자 증가, 인큐베이터 활동 강화, 혁신 촉진 정책 등을 통해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지만, 관광업과 스타트업의 성장 덕분에 고용 기회가 확대됐다. 유럽 재정 위기 직후인 2013년 포르투갈의 실업률은 18.3%에 달했다. 이후 노동 시장 개혁과 경기 회복에 힘입어 실업률은 2019년 6%대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말에는 6.5%였다. 다른 남유럽 PIGS 국가인 이탈리아(7.9%), 그리스(10.8%), 스페인(11.3%)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다만 유럽 다른 국가 대비 높은 소득세율 등 원인으로 내국인 인재 유출 등이 한계로 꼽힌다. 이에 포르투갈 정부는 청년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소득세 감면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 정책은 연간 소득 2만 8000유로 이하인 만 35세 이하 청년들에게 10년간 소득세를 감면하며, 첫해에는 100% 면제되는 것을 골자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