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홈쇼핑 산업은 1995년 처음 개국한 후, 약 28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쇼호스트는 현란한 말발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화면 속 ‘매진 임박’ 문구는 소비자들을 애타게 만들어 구매로 이끌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판로 역할을 해야할 홈쇼핑이 과도하게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면서 적자를 내는 기업도 늘고 있다. 조선비즈는 4회에 걸쳐 홈쇼핑 산업의 왜곡된 구조를 진단하고 해결점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10년 넘게 기능성 의류를 만들고 있는 중소기업 A사 대표는 올해부터 홈쇼핑을 통한 제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제품 개발 이후 줄곧 홈쇼핑을 통해 물건을 팔았는데, 정작 손에 쥐는 이익이 없고 오히려 손실을 보고 있어서다.
A사는 2021년에만 재방송을 포함해 모두 12차례 홈쇼핑을 통해 제품을 판매했다. 여기서 나온 매출은 17억5000만원.
그러나 이중 12억원 가량을 방송을 위한 쇼호스트 비용과 판매 수수료로 홈쇼핑사에 지급했다. 방송을 통해 올린 매출의 약 70%를 수수료로 떼어준 셈이다. 결국 생산원가를 고려하면 회사는 홈쇼핑을 통해 손실을 보게 됐다.
◇ 정액 수수료에 매출 비례 정률 수수료까지… “문 닫는 업체 수없이 봤다”
이처럼 A사가 손실을 보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정액 수수료’를 내고 ‘정률 수수료’를 또 내도록 하는 홈쇼핑의 계약 방식이었다.
정액 수수료는 방송을 통해 물건이 얼마가 팔리든, 정해진 금액의 수수료를 홈쇼핑 회사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정률 수수료는 방송을 통해 발생하는 매출액의 일부를 홈쇼핑 회사에 내도록 하는 방식이다.
A사가 홈쇼핑사에 지불한 정액 수수료는 약 7억6000만원으로, 전체 수수료(약 12억원)의 약 62%였다. 나머지 38%의 수수료는 방송 매출에 비례해 내는 정률 수수료 명목으로 홈쇼핑이 가져갔다.
A사는 제품에 따라 적게는 약 2500만원에서 많게는 약 1억5000만원 가량의 정액 수수료를 지불했다. 어느 날은 방송 한 번에 1억5000만원의 정액 수수료를 지불하고 매출액의 27%의 정률 수수료를 내기도 했다.
홈쇼핑사가 이러한 형태로 판매 수수료를 받는 것에 대해 과도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A사 뿐만은 아니다. 유제품을 만드는 중견기업 B사도 홈쇼핑 판매 비중을 줄이기로 했다.
B사 관계자는 “홈쇼핑으로 제품을 팔면 단기간에 많은 수량이 판매되는 것은 맞지만, 마진이 너무 적다”면서 “홈쇼핑사가 판매 목표 수량에 따라 정액 수수료를 받고, 이후 실제 판매된 매출에 비례해 정률 수수료를 또 받아서 제조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앞선 A사의 판매 수수료 사례는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홈쇼핑에 잘못 입점했다가 낭패를 본 기업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홈쇼핑 업계가 매년 성장세를 기록하며 ‘방송만 타면 대박’이었던 시절이 지난데다, 무리한 정액 수수료 방식을 택할 경우 적자를 낼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홈쇼핑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C 대표는 “(A사처럼)매출을 내고 방송으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정액 수수료를 내고 홈쇼핑에 입점했다가 문을 닫는 업체를 수없이 봤으며, 정액 수수료 방식은 제품 판매가 저조하면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중견기업에 비해 마케팅 역량이 부족하고, 판로 개척이 용이하지 않아 고육지책으로라도 홈쇼핑에 입점할 수밖에 없고, 홈쇼핑으로 한 번 매출을 올린 뒤에는 홈쇼핑 판매를 줄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A사 대표는 “수수료를 많이 내더라도 판로가 마땅찮은 중소기업들은 홈쇼핑에 입점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지만 홈쇼핑을 통해 제품을 알려도 이후 판로난을 해결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했다.
한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많은 중소기업들이 홈쇼핑을 통해 매출이 불어나면 직원도 매출에 맞춰 뽑고, 그에 맞는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한다”며 “그 상황에서 투자 유치나, 기업 공개, 인수합병 등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키려면 매출 성장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홈쇼핑 매출을 대체할 판로를 찾지 못하면 무리하게 홈쇼핑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높은 수수료 부과… “홈쇼핑 설립 취지 왜곡”
홈쇼핑사들의 실질수수료율은 주요 유통업태 가운데 가장 높다. 실질수수료율이란 대규모 유통업체가 납품·입점업체로부터 받은 수수료와 판촉비 등 추가 비용의 합을 상품 판매 총액으로 나눈 것이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형 유통업체 판매수수료율 등 유통거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업태별 실질수수료율은 TV홈쇼핑이 29.2%로 가장 높았다. 백화점(19.3%), 대형마트(18.6%), 아웃렛·복합쇼핑몰(13.3%), 온라인쇼핑몰(10.3%) 등 홈쇼핑보다 적게는 10~20% 수수료율이 낮다.
홈쇼핑 업체 가운데는 CJ오쇼핑이 39.3%로 가장 높았다. 이어 ▲롯데 39.0% ▲GS 38.6% ▲현대 37.6% ▲홈앤 34.0% ▲NS 31.6% ▲공영 23.5% 순이었다.
홈쇼핑은 대기업보다는 중소·중견기업에 더 혹독한 수수료율을 적용했다. 홈쇼핑은 중소·중견기업 입점업체와 대기업 입점업체에 적용하는 수수료율 차이가 유통 채널들 가운데 가장 컸다.
TV홈쇼핑은 중소·중견기업에 대기업 입점업체보다 8%포인트(P) 높은 실질 수수료율을 적용했다. 이는 아웃렛·복합쇼핑몰(7.5%), 온라인쇼핑몰(3.9%), 백화점(3.0%), 대형마트(0.5%) 등보다 높은 것이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이러한 홈쇼핑의 운영 실태가 홈쇼핑 산업의 설립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홈쇼핑사의 사업자 선정에 ‘중소기업 활성화와 유통산업 기여 실적 우수성’이 전체 평가의 27%를 차지할만큼 높은데다, 롯데가 인수한 우리홈쇼핑의 경우 당초 중소기업 상품의 활성화가 설립 취지인 만큼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수수료율이 대기업 보다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홈쇼핑 산업 자체가 판로난을 겪는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 증진과 판로 개선을 위해 만들어진 산업인데 홈쇼핑 업체들이 중소기업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 제품은 판매량이 중소기업 제품에 비해 많을 수 있어 충분히 수수료를 받아갈 수 있고, 홈앤쇼핑의 경우 대기업 제품에서 남긴 이익을 입점 중소기업에 혜택이 가게끔 운영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런 부분을 검토해 정책적으로 보완해야 홈쇼핑사들도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판매 수수료를 인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홈쇼핑 업계는 수수료율이 높은 이유로 단시간에 큰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홈쇼핑의 특성 때문도 있지만, 유료방송사업자에 지불하는 송출수수료에 원인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사업자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송출수수료는 올랐다”면서 “송출수수료 부담이 덜어진다면 판매수수료 등 입점업체에 전가되는 부담도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