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롯데그룹이 유튜브 채널에 30초짜리 CF 영상을 공개하자 “신선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영상은 공개된 지 5일 만에 조회수가 150만회를 넘었다. 절반은 한글, 절반은 영어로 달린 댓글에선 롯데와 요즘 2030세대가 열광하는 신예 힙합 아티스트 DPR크루의 만남이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롯데는 창립 50주년이었던 2017년에 기업 슬로건을 ‘함께 하는 친구 롯데’로 설정한 뒤 4년 만인 올해 7월 ‘오늘을 새롭게 내일을 이롭게’로 바꿨다. 기업의 지향점을 ‘현재’에서 ‘미래’로 전환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슬로건 교체와 함께 기업 브랜드 광고도 새롭게 선보였다. 이번 광고는 모델들이 미래 도시를 걸어가면서 롯데의 신성장 동력인 4대 사업 분야 ▲차세대 대체육 개발 ▲스마트 쇼핑플랫폼 ▲친환경 수소 생태계 구축 ▲IT 기반 스마트 호텔 솔루션을 짧게 영상으로 구현한 모습을 보여줬다.
공익 광고를 연상케 했던 롯데의 4년 전 광고와는 딴판이다. 당시 기업 광고에는 어린 아이, 젊은 커플, 노년층이 차례로 등장하고 ‘인생의 좋은 순간엔 어디에나 롯데가 있습니다. 모든 순간을 같이 나누고 같이 성장하는 당신의 가까운 친구, 함께 가는 친구 롯데’라는 멘트가 나온 뒤 ‘함께 가는 친구 롯데’ 슬로건이 등장한다.
이번 광고의 가장 큰 차별점은 CM송이다. 롯데가 기업 광고에 CM송을 도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에는 슬로건에 음을 입히는 징글(Jingle)을 삽입했다. DPR크루가 만든 CM송에선 슬로건의 핵심 형용사인 ‘새롭게’, ‘이롭게’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노래 가사에 ‘새롭게 즐길게, 건강에 이롭게’가 나오면 대체육 고기가 화면에 등장하고, ‘새롭게 써볼게 나에게 이롭게’가 나오면 스마트 쇼핑 플랫폼이 나오는 식이다.
통상 특정 제품이 아니라 기업 이미지를 홍보하는 광고는 CM송이 별도로 없거나, 있어도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인 경우가 많다. CF를 제작한 대홍기획 측 관계자는 “시청자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며 “변화하는 롯데의 여러가지 모습을 시각화 하려 했고, 특히 소비자 조사, 데이터 분석을 통해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한 말·1981~2010년생)에게 인기있는 인플루언서를 섭외했다”고 전했다.
DPR크루는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요즘 소비재 기업들 사이에서 섭외 1순위로 꼽힌다. 2030세대 힙합 뮤지션 5명으로 구성됐으며 노래와 랩을 섞은 싱잉랩과 세련되면서도 밝은, 이른바 ‘트렌디한 요즘 감성’의 음악이 특징이다. 지난 2017년 첫 앨범을 발매한 후 나이키, 아디다스, 리바이스, 버드와이저 등과 협업해 마케팅을 진행했고 작년 10월 LG유플러스(032640)의 아이폰12 광고에도 출연했다.
롯데의 변화는 인사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지난 3월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롯데쇼핑(023530)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온의 수장 자리를 내부 인력에서 이베이코리아 전략기획본부장 출신인 나영호 부사장으로 교체했다. 8월에는 롯데지주 내 ESG경영혁신실 산하에 헬스케어팀과 바이오팀을 새로 만들고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출신 인력을 팀장으로 영입했다. 이달 14일에는 디자인경영센터를 신설하고 초대 센터장에 배상민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선임했다. 배 교수는 1971년생인데, 계열사 대표에 준하는 센터장 자리를 50대 초반에게 준 것 자체가 파격적이란 평가다. 최근에는 그동안 내부 인력에 맡겼던 ‘기업문화 전문가’ 자리를 외부 경력직으로 돌렸다.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스타트업 투자에도 공격적이다. 롯데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롯데벤처스는 올해 1~9월 126억원을 투자했는데 작년 연간 투자액(91억원) 대비 39% 늘었다. 순식물성 마요네즈 등을 연구하는 더플랜잇과 배양육 연구개발 기업 스페이스에프를 비롯해 대체식품 관련 스타트업 10여곳에 투자했고 도시 및 공간 기획 스타트업 어반플레이, 인공지능(AI) 기반의 매출 진단 솔루션을 제공하는 라플라스에도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강조해온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변화와 혁신이 점진적으로 가시화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소비 전환이 가속화 되며 신세계(004170)와 같은 경쟁사가 조직 개편, 인재 영입, 인수합병(M&A)에 나서며 발빠르게 온라인·모바일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한 반면 점포 확장에 주력해온 롯데는 상대적으로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롯데라고 하면 대중들이 떠올리는 오래되고 느린 기업 이미지도 문제였다.
신 회장은 지난 1월 사장단 회의에서 “시대 흐름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CEO부터 변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회사 및 그룹 전체 조직의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7월에는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실패를 숨기는 것,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실패조차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