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 차량 돌진 사고로 1명을 숨지게 하고 12명을 다치게 한 운전자 김모(75)씨는 치매 진단을 받고 1년을 넘긴 시점에 차량 운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 진단 2개월 전에 운전면허를 갱신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운전을 못하게 할 방법은 없었다. 김씨가 지난달 31일 사고를 냈을 때는 10개월 가까이 치매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치매를 앓으면 인지 기능이 떨어져 운전 능력도 저하하는데, 이런 운전자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가족들이 치매 환자의 운전을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치매 진단받고 진료·복약 없이 10개월… 운전면허 있는 상태에서 사고
3일 경찰에 따르면 1종 보통 면허를 보유한 운전자 김씨는 2022년 2월 양천구 한 보건소에서 처음 치매 소견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적성검사를 통과해 운전면허를 갱신했다. 이후 2023년 11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았고, 처음 3개월 간은 약을 복용했다. 김씨는 작년 2월 약이 떨어지자 가족들 권유에도 불구하고 치매 진료나 약 처방을 추가로 받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31일 에쿠스 차량을 몰고 깨비시장을 지나가다 점포로 돌진해 13명의 사상자를 냈다. 김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입건돼 있다.
치매를 앓고 있다면 차량을 운전하다가 사고를 낼 가능성이 커진다. 최성혜 인하대 의대 신경과 교수는 “치매 환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지기능이 계속 떨어지기 때문에 운전을 하게 두는 건 너무 위험하다”라며 “치매 진단과 동시에 운전을 그만 두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
◇ 치매 진단 고령자, 운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허점 있어
김씨가 치매 진단을 받고도 운전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현 제도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법령상 치매 환자는 운전면허를 원칙적으로 취득할 수 없다. 하지만 김씨는 이미 운전면허를 소지한 상태였고 치매 진단 2개월 전에 면허 갱신을 받았다.
고령 운전자가 내는 사고를 막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운전자는 3년 마다 적성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때 치매인지선별검사(CIST)를 필수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김씨는 운전면허를 갱신할 당시 73세여서 CIST를 받지 않았다.
또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으면 경찰청에 자동 통보되고, 경찰청이 다시 한국도로교통공단에 통보해 적성검사를 받게 하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가 김씨에게는 작동하지 않았다. 치매 진단을 통보하는 기간에 제한이 없어 실제로 적성검사를 받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美日英, 가족·룸메이트·간병인·친구도 ‘운전 중단’ 신청 가능
치매 환자의 운전면허 보유와 차량운전에 대해 대한치매학회는 “주위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운전을 관두게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일본·영국 등은 ‘가족 신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차량국에 가족이 치매 환자의 인지능력 상태를 서면으로 제출해 운전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몇몇 주에서는 룸메이트, 간병인, 오랜 기간 서로 교류한 친구 등도 운전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치매 환자와 아예 모르는 사이인 사람도 운전 중단 요청이 가능하다.
일본은 가족이 경찰에 신고해 치매 환자 운전을 막을 수 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치매 환자 측에 의학적 검사를 요구하고, 운전 시뮬레이터 등을 통해 운전 적합성을 평가한 뒤 면허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
영국은 치매 환자가 본인 상태를 영국 운전면허청(Driver and Vehicle Licensing Agency)에 스스로 신고하도록 규정돼있다. 신고하지 않으면 최대 1000파운드(한화 약 180만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