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주식투자로 은퇴자금 절반 이상을 날린 김모씨는 최후의 수단으로 1000만원을 내고 투자 종목 공유하는 투자컨설팅그룹 S사 회원으로 가입했다. S사 직원은 김씨에게 “임직원에게만 공개됐던 여의도 극비 종목을 알려주겠다”며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코인원에 상장된 블록체인 기반의 P2E(Play to Earn: 돈 버는 게임) 게임 소셜 플랫폼 ‘루데나 프로토콜 코인’을 저렴하게 투자할 수 있는 ‘프라이빗 세일’을 소개했다. 이후 김씨는 대포통장으로 1억원가량을 보냈고, 그들이 사기단이란 것을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픽=손민균

4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제2의 위믹스 코인’이라며 한때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코인원에 상장해 거래됐던, 루데나 프로토콜을 상장가보다 저렴하게 매수할 기회라며 투자를 유도한 뒤 24억원을 가로챈 투자컨설팅그룹 S사 관계자 외 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수사 중이다.

개인에게 고수익을 미끼로 프라이빗 코인이나 락업된 코인을 판매하는 것은 전형적인 스캠 코인(사기를 목적으로 한 암호화폐)의 방식이다. 경찰에 따르면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 사이 S사 소속 마케팅직원 약 47명은 은퇴를 앞둔 중년 50여명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법조계는 전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는 피해자를 합하면 200여명, 피해 금액도 100억원대를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S사 직원들은 루데나 코인을 ‘위믹스 코인’ 등과 유사하다고 설명하면서 회사에서 알려준 대본에 따라 유료 회원들에게 “3개월에 최소 300~500%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이런 정보를 획득하는데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번 기회에 무조건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주식은 장이 좋지 않으니, 주식 예수금을 전부 코인에 투자해 단기간에 수익을 보게끔 유도했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코인 투자를 유도한 사기단이 운영했던 채팅방 대화 내용 재구성. /독자 제공

9억3500만원을 순식간에 날린 60대 정모씨는 심지어 루데나라는 코인을 추천받는데만 자그마치 6000만원을 지불했다. 정씨는 “6개월 내로 원금 회수는 물론 300% 수익률을 낼 수 있는데 물량이 제한적이라 원하는 만큼 사지도 못한다”는 S사 컨설팅업자의 말에 사업 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싹 날렸다고 전했다.

S사 관계자들은 상장 후 일정 기간 매각을 금지하는 ‘락업’ 된 코인을 판매해 투자자들이 원할 때 출금할 수 없도록 했다. 락업 기간은 90~120일로 설정돼 있었고 코인 가치가 빠르게 하락할 때, 피의자들은 락업 기간을 30일 더 연장하면서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진화한 가상자산 사기 수법이 기승을 부리는 만큼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지윤 담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비현실적인 고수익을 보장한다면서 고액을 투자하게끔 유도하면 스캠 코인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며 “프라이빗 세일은 기관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비공개로 진행하는 세일인데, 누군가가 특별히 판매한다면서 자신에게 다가온다면 유사수신행위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다.

주식회사 바인트리에서 발행한 루데나 코인은 모바일 게임이나 겜톡톡이라는 앱(애플리케이션)에서 실제 가상화폐로 사용할 수 있는 코인으로 알려져 코인원에 상장했지만, 지난해 12월 가상자산의 용도와 맞지 않게 활용된 이력이 확인되면서 상장 폐지했다. 한편 바인트리는 이번 투자사기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