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암페타민 양성 나오네요”
14일 오후 경남 양산시에 있는 부산과학수사연구소에서 박유란 독성화학과 약독물실장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니터 속 빨간색 꺾은선 그래프는 얇고 뾰족한 가시처럼 위로 높게 치솟아 있었다. 박 실장은 “소변에서 검출된 메스암페타민 성분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했다”며 “이렇게 소변 간이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웬만해선 정밀검사에서도 양성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날 박 실장이 간이검사를 진행한 소변은 얼마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에서 검거한 20대 남성 A씨의 것이다. A씨 체모를 이용해 진행하는 정밀검사 결과도 양성이 나올 경우 A씨가 마약을 했다는 확실한 물증이 생기면서 검찰 기소와 처벌을 할 수 있다. 정밀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오면 간이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최종 음성 판정이 나온다.
◇ 마약 사범 급증에 분주해진 국과수
최근 유아인을 시작으로 이선균, 지드래곤과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마약 사건에 휘말리면서 마약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 마약 유통과 마약 사범 규모 또한 매년 늘어나는 가운데 마약 수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지난 2021년 기준 서울 국과수의 1인당 마약 감정 건수는 4785건에 달한다
이날 조선비즈가 방문한 부산 국과수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1월에서 9월까지 부산지방경찰청에서 검거한 마약사범 수는 100명으로 경기 남부(119명), 대구(104명)에 이어 전국 3위다. 박유진 부산과학수사연구소 독성화학과장은 “지난해 우리 직원 1명당 마약 감정 건수가 5000건 정도 된다”며 “부산은 인구가 많고 큰 항구를 끼고 있어 마약 사범 생체 시료는 물론 세관에서 적발한 마약들까지 감정 의뢰가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 마약 샘플 접수부터 성분 분석까지
부산과 경남지역 경찰이 범죄 현장에서 입수한 마약 관련 증거들, 그리고 세관이 압수한 마약들은 부산 국과수 마약접수실로 모인다. 부산 지역 세관이 경찰을 거쳐 보낸 양귀비와 대마초 샘플들, 경남의 한 모텔에서 경찰이 입수한 주사기들이 이곳에 놓여있었다.
직원이 성인 남성 몸통보다 큰 박스를 열자 잡초를 불에 태운 듯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직원은 이것이 “대마초 특유의 냄새”라며 “이 정도면 그래도 냄새가 약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갑을 낀 채 대마초 한 꼬집 정도를 집어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 올려둔 뒤, 종이 양 끝을 접어들고 대마초를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털어 넣었다. 그 다음 대마 성분 추출에 필요한 시약을 케이스 안에 넣고 흔들어 섞었다. 이 상태에서 하루 정도 있으면 잎 속 성분이 시약에 녹아나오는데 이를 분석해 대마 여부를 판정한다.
마약접수실은 약독물 정밀분석 장비실과 이어져 있었다. 이곳에는 마약 투약이 의심되는 용의자들로부터 경찰이 채취한 소변과 체모, 그리고 이를 분석하기 위한 장비들이 있었다. 여기서 이뤄지는 소변 간이검사를 통해 메스암페타민, 대마초, 코카인 등 약물 성분을 분석해낼 수 있다.
◇ 소변 끓이고 체모 녹이고…마약 간이·정밀검사 원리
소변 간이검사 원리는 이렇다. 우선 ‘임상화학분석기’라는 장비를 이용해 마약 투약 용의자 소변샘플을 시약과 섞는다. 이러면 소변 속 마약 성분이 시약과 반응해 증폭한다. 이 상태에서 ‘가스크로마토그래피’라는 장비에 샘플을 넣으면 이 장비가 샘플 속 액체를 끓여 수분은 날아가고 마약 성분은 기체가 돼 장비에 달려있는 측정용 바늘에 달라붙고 성분 수치가 컴퓨터에 기록된다. 그 숫자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면 간이검사 양성 판정이 나오는 것이다. 이 작업은 몇 시간 안에 끝난다.
다른 실험실에서는 마약 투약 용의자 체모에서 메스암페타민 성분을 추출하는 정밀검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선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체모를 넣고 가위질을 하는 세절작업이 이뤄진다. 그렇게 수백 조각 난 체모가 담긴 플라스틱 케이스에 시약을 넣고 기계에 넣어 16~24시간동안 섞어줘야 한다. 이러면 가위가 체모를 잘라내며 생긴 단면과 체모 겉부분에 생긴 상처로부터 마약 성분이 우러나와 시약에 섞인다.
섞기 작업이 끝난 샘플을 꺼내 열처리 장비로 옮겨 2~3일동안 가열하면 시약 속 수분과 체모는 녹고 시약에 섞인 마약 물질만 케이스 바닥에 남는다. 이 물질 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을 기록하면 정밀 검사에서도 양성 판정이 나오는 것이다. 앞서 이선균이 받은 국과수 정밀검사도 같은 과정을 거쳤으나 결과는 음성이었다. 지드래곤에 대한 체모 정밀검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 “마약청정국 지키려면 국과수 마약 감정 인원 늘려야”
소변 간이검사는 한번에 다양한 마약 성분을 검출할 수 있지만 체모를 이용한 정밀검사는 검출하고자 하는 마약 성분에 따라 방법도 다르다. 메스암페타민과 함께 국내 마약 범죄 양대산맥을 이루는 대마초 정밀검사 과정도 볼 수 있냐 묻자 부산 국과수 측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대마초 정밀검사에 필요한 기계와 이를 다룰 인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국내에서 대마초 정밀검사는 서울 국과수와 강원도 원주에 있는 국과수 본원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다른 지역 국과수에 대마초 정밀검사 의뢰가 접수되면 체모 샘플을 전부 서울이나 원주에 보내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마약 음·양성 여부가 늦게 나오면서 경찰 수사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용의자의 마약 투약 장면이 잡힌 폐쇄회로(CC)TV 자료가 있는 게 아닌 이상, 경찰이 마약 범죄 혐의를 입증하려면 국과수 감정 결과가 무조건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 마약 감정 인력은 턱없이 모자라다. 현재 전국 국과수에서 근무 중인 마약 감정 인력은 고작 20명이다. 그 중 5명이 부산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유진 과장은 “마약 사건이 크게 늘면서 감정 의뢰도 급증하고 있는데 인력은 제자리걸음 중”이라며 “원래 정밀검사 같은 경우 경찰이 음·양성 여부를 2주 안에 받아드는 게 보통인데, 지금은 감정 의뢰가 하도 밀려있어 한 달 이상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과장은 “마약청정국 지위를 지키려면 반드시 감정 인원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