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쪽부터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9일 오전 7시쯤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출구 주변에 있는 극장 해피시어터에 남성 2명이 들어섰다. 위아래로 흰색 방호복에 방진마스크까지 착용한 이들은 청소기처럼 생긴 장비 여러대를 지하 2층에 있는 객석까지 조심스럽게 옮겼다. 서울과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 7곳에 지점을 두고 있는 해충 방역 업체 세이브프롬에서 빈대 예방 작업을 위해 보낸 직원들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해피시어터 관계자는 “우리 극장은 물론 대학로 극장들 중 빈대가 나왔다는 곳은 아직 하나도 없다”며 “다만 최근 빈대가 서울 곳곳에 퍼지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방역 의뢰를 맡겼다”고 말했다. 이 극장은 203석 규모로 지난 2008년 완공된 이후부터 15년간 연극을 상영해 왔다.
이날 방역 작업을 지휘한 주원형 세이브프롬 실장은 “추석을 기점으로 빈대 신고가 급증해 최근에는 매일 5~6건씩 빈대 퇴치·예방 작업을 진행한다”며 “빈대가 주로 출몰하는 고시원, 찜질방은 물론이고 극장, 일반 가정집, 지하철, 공공기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의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방역 작업이 시작되자 직원들은 각자 다른 위치로 흩어졌다. 한 명은 무대 뒤에 있는 배우들 분장실과 대기실, 다른 한 명은 무대와 객석을 맡았다. 이들은 진공청소기처럼 생긴 노란색 장비를 나란히 집어들고 각자 위치로 향했다. 주 실장은 이 장비가 “고온 스팀(증기) 처리를 위해 특수 제작된 것”이라 설명했다.
그가 플라스틱 원통에 달린 노란 버튼을 누르자 원통 끝이 뜨거운 증기를 뿜으며 ‘피시식’ 소리를 냈다. 주 실장은 “이 장비가 있으면 의자나 침구류, 벽 틈새처럼 빈대가 주로 숨는 곳에 100도짜리 증기를 발사할 수 있다”며 “빈대가 이 증기를 맞으면 뜨거움을 참지 못해 밖으로 기어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뜨거운 증기가 차오르자 좁고 선선했던 분장실은 한 순간에 후덥지근해졌다.
다른 직원은 무대 구조물과 관객들이 앉는 의자에 빈틈 없이 증기를 쐈다. 증기 압력이 높은 탓에 이따금씩 의자 틈에서 빈대 대신 먼지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이날 방역팀은 고온 증기 처리에만 1시간 넘는 시간을 썼다. 주 실장은 “빈대가 뭉쳐있거나 알을 낳은 자리를 파악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긴 시간동안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고온 증기 처리가 끝난 뒤에는 살충제를 뿌리는 작업이 이어졌다. 남색 무선청소기를 닮은 살충제 분사기가 빈대 잡는 약품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무대 뒤쪽을 더해 극장 전체가 에프킬라 냄새로 뒤덮였다. 방역팀 직원들은 마스크를 고쳐쓰고 모자 위에 걸쳐둔 투명한 고글을 착용해 눈과 호흡기를 보호했다.
최근 일부 살충제 성분이 빈대에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주 실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문했다. 그는 “해충 박멸 업체들이 빈대 퇴치에 쓰는 살충제 성분은 거의 대동소이하다”며 “다만 약물을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쓰는지, 또 어떤 비율로 희석해서 쓰는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온 증기 처리가 1시간 넘게 진행된 반면 살충제 작업은 30분도 안 돼서 끝났다. 주 실장은 “증기 처리 과정에서 빈대가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살충제 작업이 금방 끝났다”며 “애초에 오늘 작업은 빈대 퇴치가 아니라 빈대 예방”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살균·소독용 장비가 등장했다. 성인 남성 팔뚝 정도 크기에 위로 손잡이가 달린 흰색 기계가 진한 연기를 뿜는 모습은 가습기를 떠올리게 했다. 주 실장은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연무 분사기를 쓰고 있다”며 “빈대 말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세균들을 잡아내고 살충제 처리가 끝난 뒤 남은 냄새도 없애준다”고 말했다.
무대 뒤에서도 살균·소독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분장실이 짙은 연기로 가득 차자 방역팀 직원은 분장실 불을 끈 뒤 밖으로 나왔다. 이 직원은 “작업을 시작할 땐 모든 방에 불을 다 켠 다음 모든 작업이 끝난 뒤에 불을 끈다”며 “해당 공간은 작업이 다 끝났다고 우리끼리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2시간에 걸친 작업 동안 빈대는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방역팀은 살충제와 같은 약품을 2L가량 사용했다. 극장 관계자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기점으로 각종 소독 작업을 통해 극장 상태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며 “관객 분들이 안심하고 극장을 많이 찾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끝으로 주 실장은 가정집에 빈대가 있는지 없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린 자국이 한 곳에 몰려있으면 빈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모기와 달리 빈대는 혈관을 한 번에 찾지 못하기 때문에 비슷한 부위를 반복해서 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빈대가 혈관을 한 번에 찾았을 경우 모기가 문 상처보다 훨씬 크게 부풀어오른다고 주 실장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