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앞에서 그렇게 캐리어(여러 개의 음료를 한 번에 가져가기 쉽게 끼울 수 있는 종이 받침대)를 던져도 돼요?”
20일 경기도 수원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손님이 점주에게 주문한 스무디를 확 던져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점주는 컵 안에 들어있던 음료를 머리와 얼굴에 뒤집어썼다. 손님은 음료 4잔을 주문한 뒤 캐리어를 4구짜리·2구짜리 중 선택해달라는 점주 요청에 고민하다 2구짜리를 달라고 했는데, 점주가 준비해 뒀던 4구짜리 캐리어를 구석에 ‘툭’ 던진 게 못마땅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경찰에 신고한 점주와 손님 간 합의가 이뤄지면서 마무리되는 수순이지만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이처럼 소비자들이 이른바 ‘내기분상해죄’를 이유로 사과를 요구하거나 본사에 항의를 하고 악의적인 리뷰를 남기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말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기분이 나쁠 수 있어도 예전에는 참고 넘어가던 행위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 때문에 젊은 층을 주축으로 한 서비스업 기피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인사 안 했다고 일주일 내내 항의... “확증 편향 강해져 ‘내가 옳고 남들은 틀리다’고 생각”
경기도 소재의 한 백화점 매장 점원 윤모(45) 씨는 올해 초 본사에 일주일 내내 자신과 동료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한 고객 때문에 악몽에 시달렸다. 이 고객은 “본인이 매장 앞을 지나가는데 점원이 인사를 하지 않더라”며 점원 한명 한명을 지목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매장을 지나가는 모든 손님에 대해 인사를 하라는 내부 규정은 없고 각자 맡은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인사를 못 하는 경우도 있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황이 더욱 나빠질까 걱정돼 결국 사과했다.
서울 동대문구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 모(26) 씨는 지난달 계산을 하면서 “봉투 드릴까요?”라고 했다가 손님에게 “보면 모르냐”, “상식이 없냐”는 소리를 한참 들었다. 정부가 편의점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판매를 유상으로만 허용하고 있어 점주 요청에 따라 손님이 필요한지 여부를 물어보고 있었다. 이 손님은 “많이 샀으니까 당연히 봉투가 필요한 건데 그걸 왜 물어보냐”며 한참을 씩씩거리며 따지다 “죄송하다”고 사과하자 돌아갔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서비스업을 제공 받는 과정에서 ‘내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도를 넘는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심리가 있다고 봤다. 먼저 돈을 내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사람을 계층화하는 심리다. 서비스를 돈 주고 사는 본인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비상식적인 갑질을 하는 사람 중에는 인간을 계층화시켜 철저히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개인화 알고리즘에 적응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자체가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병철 한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요즘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경험을 할 기회가 많이 없다”며 “유튜브·SNS 등의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것만 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 편향’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본인의 생각이 점차 공고해져 이 세상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며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보면 ‘틀렸다’고 판단해 비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인력난 심각한 대면서비스업... 현장선 “젊은 층 아예 안 온다”
문제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도 ‘손님이 왕’이라는 오랜 관행 때문에 조용히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쌓이고 쌓여 서비스업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면 서비스를 주로 제공하는 숙박·음식점업·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은 올해 상반기 미충원 인원(구인 인원에서 채용인원을 뺀 것)이 전년 대비 4000명 증가해 2만9000명에 이른다. 제조업, 건설업 등의 미충원 인원이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현장에선 특히 젊은 층이 대면서비스업을 안 하려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한 백화점의 의류 매장 점원 김모(50) 씨는 “영캐주얼(10~30대 초반을 주력층으로 하는 제품 군) 매장인데 젊은 지원자가 없어 40~50대를 채용한 지 꽤 됐다”며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으려 해도 하루 종일 서서 고객을 응대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그 시간에 쿠팡 물류센터나 음식 배달을 하는 게 낫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고객과 접할 일이 많은 객실 관리, 프런트 응대, 식음료(F&B) 서빙 직군은 젊은 층을 채용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고객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이른바 갑질을 해도 웬만하면 수용하라는 교육 내용에 거부감을 갖는 신입들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