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인 강모(31)씨는 2021년 4월 직장이 있는 서울 강서구에 9평 남짓한 신혼집을 마련했다. 볕도 안 드는 좁고 답답한 집이었지만 ‘조금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부부는 생계를 꾸려갔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부부는 돌연 전세사기 피해자가 됐다. 보증금을 한 푼이라도 건지려 했지만, 전세보증금이 2억원 후반대로 당시 소액 임차인 기준 금액(1억5000만원)을 벗어나 한 푼도 구제받지 못했다.

강씨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았다는 뜻)’해서 좁은 오피스텔에 입주한 신혼부부가 어떻게 소액 임차인이 아닐 수 있냐”며 “같은 서울이라도 지역별로 전세금이 천차만별인데 일률적으로 보증금이 1억5000만원을 넘기면 못 받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서울 동서남북은 기준을 달리 둬야 하지 않나”라고 푸념을 했다.

지난 4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여야가 전세사기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피해를 구제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공매로 집이 넘어간 소액 임차인에게 전세금 중 일부를 돌려주는 ‘최우선 변제금’ 지급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아서다. 최우선 변제금을 받으려면 전세보증금이 일정금액을 초과해선 안되는데, 법에선 전국을 4개 권역으로 쪼개 금액 기준을 설정했다. 서울 내에서도 구별로 전세금이 천차만별인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손민균

◇ 강남·강북, 전세가 2배 차이 나는데...최우선 변제 기준 같아

최우선 변제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공매에서 낙찰됐을 경우, 피해자가 은행보다 먼저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지역별로 전세가가 일정 금액을 넘지 않아야 최우선 변제금을 지급하는데, 지역구분은 ▲서울 ▲과밀억제권역 ▲광역시와 수도권 일부 ▲그 밖 지역 4개에 불과하다.

최우선 변제금을 지급하는 지역구분은 2000년도까지 2개에 그쳤다. 1984년부터 2001년 9월까지 특별시와 광역시, 두 개로만 나뉘던 지역 기준은 2001년 하반기 수도권 정비계획이 본격화되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추가되면서 3개로 늘었다. 이후 2010년 서울시 집값이 지방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자 ‘서울’이라는 기준이 생기며 4개로 늘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지역간 집값 편차가 커졌음에도 새로운 기준을 두지 않고 있다.

서울의 경우 올해 2월부터 전세보증금이 1억 6500만원을 넘기지 않아야 최우선 변제금을 받을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 동남권 주택의 평균 전세가는 6억4000만원, 서울 동북권은 3억3500만원으로 시세가 2배 가까이 차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우선변제금을 받기 위해선 두 곳 다 전세보증금이 1억6500만원 이하라는 동일한 기준에 충족돼야 한다.

평균 전세가가 앞자리부터 다른 수도권 일부 지역과 세종시도 동일한 기준에 묶여있다. 지난 4월 기준 경기 경부1권(과천·안양·성남·군포·의왕)의 평균 전세가가 3억9000만원, 세종시는 2억10000만원이지만 두 지역 모두 변제금을 받기 위해선 전세보증금 1억3000만원 이하라는 같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평균 전세가가 1억5000만원을 넘는 제주도와 9000만원도 안 되는 전남도 같은 분류에 속한다. 두 지역 소재 주택은 모두 보증금이 7500만원 이하여야 변제 대상이 된다.

전문가들은 최우선변제금을 지급하는 지역 기준을 세분화해 전세가격의 지역 편차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현재는 같은 서울이면 강남이든 외곽이든 같은 기준을 적용해 최우선변제금을 지급하는데 전세가격이 몇 배가 차이 나기도 하는 상황”이라며 “최우선변제금 상향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단순화된 지역구분도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도 “최우선 변제금액 자체는 2~3년에 한 번꼴로 상향 조정이 됐지만, 변제금을 지급하는 지역 구분 기준은 13년째 4개뿐”이라며 “행정편의를 위해 지역을 아주 큰 틀에서만 나눈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이어 “직장 때문에 강남 6~7평짜리 집에 사는 20대 청년이 과연 소액 임차인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며 “현재 지역별로 전세가가 천차만별인 상황을 감안해 기준을 세분화하고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