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한국은 2001년부터 합계출산율이 ‘초저출산’ 수준인 1.3명대 안팎을 유지해 왔는데, 2015년(1.24명)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며 세계에 유례가 없는 0.7명대 출산율을 기록했다. 그런데 한국 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국가들도 공통적으로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다. 한국과 비슷하게 2015년을 전후해 출산율이 하락세가 두드러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이 비어 있다. /조선DB

해외 전문가들은 저출산 원인으로 한국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과도한 양육 부담, 여성들의 경력 단절, 비싼 집값 외에 다양한 현상을 제기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소셜미디어(SNS)다. SNS에서 접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접하면서 가족 형성과 자녀 양육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출산을 연기하거나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럽, 동아시아보다 상황 나을 뿐 출산율 낮아지는 현상 나타나

저출산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문제다. 중국은 인구를 줄이려 시행한 ‘한 자녀 정책’을 폐지했다. 2013년에는 부부 중 한 명이라도 독자(獨子)일 경우 두 명의 자녀를 둘 수 있게 했고, 2016년에는 ‘독자’ 조건을 없앴다. 2021년에는 ‘한 가족 세 자녀’도 허용했다. 그러나 출산율은 오르지 않았다. 합계출산율은 2016년 1.77명이었으나, 2021년에는 1.15명으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일본은 2010년대 들어 1.4명대의 합계출산율을 유지했으나, 2015년 1.45명을 기록한 뒤 서서히 줄어 2021년에는 1.34명으로 감소했다.

유럽도 상황이 동아시아보다 나을 뿐이지 추세는 비슷하다. 영국의 합계출산율은 2015년까지 1.8명이 넘었지만, 2016년 이후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해 2021년에는 1.53명을 기록했다. 프랑스의 출산율은 2014년만 해도 인구규모 유지가 가능한 2.1명에 가까운 2.0명이었다. 그러나 점차 줄며 2021년에는 1.83명으로 하락했다.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의 2014~2020년 합계출산율 추이. /세계은행 홈페이지 캡처

◇출산율 ‘0.78명’ 충격에 “옛날은 인스타그램도 없으니 그냥 살았지만…” 글 화제 되기도

한국은 저출산의 원인으로 주로 집값과 일자리, 사교육비를 포함한 자녀 양육비 등 경제적인 문제를 꼽고 있다. 일부는 심리적인 문제를 든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일 개최한 ‘저출산 대응 2030 청년 긴급 간담회’에 참석한 미혼 청년들은 ‘과도한 경쟁과 남들과의 비교의식’을 결혼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언급했다.

‘남들과의 비교’가 예전보다 심해졌다면 그 배경에는 2010년대 들어 확산된 SNS가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틱톡, 유튜브 등을 널리 이용하게 되면서 과거보다 자신의 삶을 남들과 더 많이 ‘비교’할 수 있게 됐고, 실제로 비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은 최근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이용하는 ‘블라인드’ 앱에 올라와 화제가 됐다. 한 한 유통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은 ‘출산율 0.78명을 보고 느낀 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옛날 같으면 스마트폰도 인스타그램도 없으니 ‘아 그냥 다들 그렇게 서민으로 사는 거임’하고 살면 된다”며 “이제 나와 내 불쌍하고 지극히 평범한 내 자식은 인스타를 통해 금수저 누가 해외 유학을 하고, 스카이(대학)에 들어가고, 건물을 물려받아 사는 꼴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면서 우리들의 사회적 위치를 매일마다 확인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우리 세대는 아이가 학교에서 비교당하는 상상만해도 미쳐버릴 것 같아서 경제적으로 평균 이상을 찍지 않으면 도저히 낳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서울교육센터에서 열린 저출산 대응 2030 청년과의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한국 소셜미디어 이용율 세계 최고 수준…비슷한 대만도 심각한 저출산

그런데 비슷한 내용의 연구 결과가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만큼이나 저출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중국의 상해교통대 닝촨린 연구원은 지난해 5월 펴낸 논문에서 중국 여성의 출산 의도에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닝 연구원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와 같은 뉴미디어 사용은 여성의 출산 의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전통적인 미디어는 큰 영향이 없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온라인 의사소통은 부정적인 사회 뉴스를 증폭시켜 사회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출산 의도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핀란드 헬싱키대의 카테리나 사벨리에바 연구원은 올해 펴낸 논문에서 출산율과 소셜미디어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핀란드의 합계출산율은 2010년 1.87명에서 2010년에 1.35명으로 빠르게 떨어졌는데, 그 배경에 소셜미디어 이용이 확대된 게 있다는 내용이다.

사벨리에바 연구원은 “2010년대에 일어난 라이프스타일 변화 중 출산과 부모로서의 역할에 영향을 미친 것은 소셜미디어의 급격한 확산”이라며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시간은 삶의 목표 중 출산 이외의 것을 우선시하게 해 출산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촉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온라인 생활은 이용자를 결혼·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태도와 경쟁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노출시켜 출산 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아이를 갖는 것 자체는 ‘비현대적’ 활동으로 분류하는 사회인구통계학적 그룹에 속하며, 현대적이고 패셔너블한 라이프스타일과 상충된다”고 했다.

소셜미디어 사용이 늘면서 젊은 남녀가 만나서 관계를 형성하는 빈도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주장도 있다. 인구 관련 컨설팅회사 데모그래픽인텔리전스의 샘 스터전 회장은 2017년 미국의 출산율이 낮아지는 데 대해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인기가 높아지며 (남녀가) 헌신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꺼리게 됐다”고 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한국의 소셜미디어 이용률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DMC미디어의 ‘2021 소셜미디어 시장 및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컨설팅업체 위아소셜 조사 결과 2021년 1월 기준 한국의 소셜미디어 이용률은 89.3%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2위다. 세계 평균(53.6%)의 1.7배 수준이다. 3위인 대만(88.1%)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0.98명으로, 심각한 저출산 현상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