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1시. 서울 성동구청 앞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현장에 보낼 구호물품을 화물차에 싣고 있다./김태호 기자

“역사적으로 연이 깊은 한국과 튀르키예가 서로 도움을 줘서 고마울 따름 입니다.” (고려대 경제학 박사과정 중인 튀르키예인 유학생 핀아르씨)

20일 서울 성동구청의 ‘튀르키예·시리아 지진피해 구호물품·구호금 모집’ 현장을 찾은 핀아르(30)씨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구호물품을 분주하게 나르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튀르키예에 있는 가족들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모두 심적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며 모든 튀르키예인들이 슬픔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성동구가 지난 13일 시작한 구호물품·구호금 모집에 전국 각지에서 구호금 1억3000만원, 구호물품 15톤(t)이 모였다. 이날 성동구는 5t 화물차 3대에 구호물품을 가득 실어 1차로 현지에 보냈다.

이날 오전 성동구청 3층 대강당엔 2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분주하게 상자를 날랐다. 15t의 구호물품이 한 차례 빠진 후였지만 강당 안엔 여전히 150여개의 상자와 150리터(ℓ)짜리 자루 17개가 쌓여있었다. 강당엔 부산, 대전, 경기 용인시, 경북 안동시 등 전국 각지에서 택배로 부친 구호물품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쉴 새 없이 강당에 쌓인 택배 상자를 열고 물품을 점검한 뒤 종류별로 물품을 나눴다. 이날 오후 봉사에 참여한 조규신(69)씨는 “평소에 자원봉사를 자주 했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나왔다”며 “현장이 가까웠으면 직접 가고 싶었을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주부 오정선(45)씨는 20일 아침 일찍 손수레를 끌고 성동구청을 찾았다. 성동구에서 하는 튀르키예·시리아 지진피해 긴급 구호물품 모집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오씨가 해외에 기부물품을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씨는 “워낙 피해가 크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마침 구청에서 이렇게 기부물품을 모으고 있어서 손소독제, 이불 등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이어서 “작은 도움이지만 건넬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며 “다음엔 마스크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말한 뒤 구청을 떠났다.

지난 6일(현지 시각)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국내에서도 이재민을 위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정부청사에 등에 구호물품을 모으기 시작했고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구호물품을 마련해 튀르키예·시리아로 보내고 있다. 여기에 직접 지방정부가 나서 구호물품 분류 작업에 소매를 걷고 나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고 있다.

20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성동구청 3층 대강당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현장에 보낼 구호물품을 분류하고 있다./김태호 기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번 튀르키예 강진에 대해 유독 안쓰러운 마음을 갖는 것은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다. 튀르키예가 과거 6·25 전쟁 때 한국을 도운 인연이 있어 오랫동안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 것이 가장 큰 배경 중 하나다.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참혹한 참사 현장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는 점도 온정의 손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인류가 큰 재난을 겪고 이제 막 회복하려는 상황에서 또 한번의 자연재해로 민족을 잃은 것에 대한 측은지심도 있다.

지자체가 나서 기부를 독려하면서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인 것도 도움의 손길을 늘린 배경이 됐다. 오정선씨도 “지진 관련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아팠는데 마침 집 근처 구청에서 구호물품을 모은다길래 기꺼이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쉼 없이 구호물품을 나르는 동안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은 계속됐다. 이날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장정아(36)씨는 겨울용 패딩을 들고 구청에 방문했다. 장씨는 “뉴스를 보니 이재민들이 추운 날씨에 텐트에서 지내고 옷을 주워 입는 모습을 봤다”며 “먼 나라지만 주위 사람이 당한 것처럼 가슴이 아파 새 패딩 하나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9명이 구호물품을 들고 성동구청에 방문했다.

20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청에서 튀르키예·시리아 지진피해 현장에 보낼 구호품들을 모집하고 있다./김민소 기자

같은 시간, 서울 성북구청에도 튀르키예·시리아로 갈 구호물품들이 상자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성북구청 직원들은 가로 60cm·세로 40cm 크기의 상자 24개를 차례차례 포장했다. 상자 안엔 코트와 패딩 등 두툼한 겨울철 외투와 기저귀, 수건 등 각종 생필품이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구호물품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때가 타지 않은 새것들이었다.

이날 성북구에 따르면 성북구는 지난 15일부터 튀르키예·시리아 지진피해 구호물품·구호금 모집을 시작했다. 15일부터 이날까지 성북구엔 의류 600여벌과 생필품 5상자, 기부금 1000여만원이 모였다. 성북구에 사는 전은주(40)씨는 이날 오전 두 자녀와 함께 구청으로 왔다. 그의 양손엔 기저귀와 생리대 상자가 들려있었다. 전씨는 “아이들에게 지구촌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걸 교육하고 싶어서 함께 왔다”며 “아이와 여성에게 당장 필요한 기저귀와 생리대를 챙겼다”고 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3명이 구호물품을 들고 성북구청에 방문했다.

여러 지자체도 앞다퉈 구호금 지원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시 차원에서 3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7일 밝혔다. 같은 날 경기도는 튀르키예에 100만달러를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세종시는 공직자 대상으로 1525만여원을 모았으며 주민 구호물품 기부를 독려하고 있다. 전라북도는 예비비로 긴급 구호금 10만달러를 편성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지난 17일 밝혔다.

한편 튀르키예·시리아 현지에선 방한용품, 텐트, 유아용 기저귀, 생리대 등의 물량이 부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순 성동구자원봉사센터장은 “튀르키예 대사관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데 현지에선 이유식, 텐트, 방한용품 등이 부족해 이재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며 “시민들의 도움이 더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