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은주 의원이 15일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쌍용차와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와 함께 국회에서 발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경제계와 산업계가 노란봉투법에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6건이 나와 있는 노란봉투법에 새 개정안 1건이 추가된 것이다. 앞서 169석의 거야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 중점과제 22개 중 하나로 노란봉투법을 포함시켰다.
이은주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노란봉투법’을 여기 계신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발의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은 51일간 파업과 31일 간 옥포조선소 도크(배를 만드는 작업장) 점거 농성을 한 하청 노동자들을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부장이 참석했다. 금소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이상규 지부장도 동참했다.
이 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에게 470억원의 손배소는 무엇을 의미하나, 사실상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하청노동조합에게 470억원은 노동조합의 존속을 위협한다”며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배소는 삶 그 자체의 파괴를 뜻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선진국에서는 법률체계에서만 존재할 뿐 사실상 사문화된 손배 가압류가 2022년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쟁의 후에 따라붙는 루틴이 되고 말았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자”고 했다.
노란봉투법은 단체교섭, 파업 등 노동조합 활동으로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끼쳤더라도 노조나 조합원에게 손해배상 청구나 재산상 가압류를 하지 못하게 한 법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2조와 3조를 개정하자는 내용이다. 19·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무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임종성·강민정·양경숙·이수진(비례)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6건이 법안이 발의돼 있고, 이날 1건이 추가된 것이다.
이 위원장의 개정안은 기존에 발의된 노란봉투법과 달리 법 적용 대상을 하청과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에까지 확대했다. 개정안에는 정의당 의원 6명 전원과 민주당 소속 의원 46명, 무소속 의원 등 총 56명이 공동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에서는 4선의 김상희·3선의 남인순·도종환·서영교·한정애 의원 등 중진 의원 등도 동참했다.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전날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전날(14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2조 개정으로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영향력을 가진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며 “노조법 3조의 개정을 통해 노조활동에 대한 손해배상을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노란봉투법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12일 하이트진로와 화물연대 간 협상이 타결된 후 “이번 정기국회에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물론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를 합리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노란봉투법’ 제정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장은 전날 국회를 방문해 민주당 소속 전해철 환경노동위원장에게 노란봉투법에 대한 경제·산업계 우려를 전달했다. 손 회장은 “개정안은 불법행위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인 사용자(회사)에게만 피해를 감내하도록 해 우리 경제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1980년대 초 프랑스에서는 노란봉투법과 비슷한 법이 만들어졌지만, 위헌 결정이 나면서 시행되지 못했다. 영국도 노조에 대해 청구액 상한만 있을 뿐 손해배상청구 자체를 막고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