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1시. 집중호우가 한바탕 휩쓸고 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은 가로등 불빛 하나 없이 어두웠다. 평소 시민들이 나들이 장소로 애용하던 수변 근처 계단에는 불어난 한강 물이 가득 차 있었고, 폭우에 꺾인 나뭇가지와 쓰레기들이 곳곳에 떠다니고 있었다. 서강대교 아래와 물빛무대 등 주요 시설 인근에는 시민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통제선이 설치돼있었다.
지난 8일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며 한강 등 하천이 범람해 한강공원 곳곳이 출입 통제됐다. 이후 비가 그치면서 침수됐었던 일부 지역은 제 모습을 다시 드러냈지만, 소양강댐 등 한강 상류 댐이 폭우로 불어난 수위를 낮추기 위해 지난 11일 한강 하류로 방류해 여전히 한강 공원은 출입이 위험한 상태였다.
그러나 통제선 너머에서는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간간히 라디오 소리도 들려왔다. 불빛의 정체는 낚시족이었다. 물이 불어나면서 물고기가 떠내려오자 이를 잡기 위해 낚시족이 한강 곳곳에 출몰한 것이다.
이들이 낚시를 하고 있던 곳은 불어난 물 탓에 나무가 반이나 잠겨 있었지만, 낚시꾼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강대교 인근에서 낚시를 하던 한 낚시꾼은 아예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기까지 했다.
통제선 너머에는 낚시족뿐만 아니라 인적이 드문 틈을 타 위험한 나들이를 즐기기 위해 나온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한강 물이 코앞까지 와있는 둔치에서 음주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 오전 1시 20분쯤에 여의도 한강공원 수변 인근에서 산책을 하던 한 시민이 발을 헛디뎌 119 구조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해당 시민이 부상을 입은 장소는 불어난 한강 물과 불과 1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여의도 한강공원 내 한 편의점 관계자는 “폭우로 인해 손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야간에 간혹 커플이나 산책을 하러 온 사람들이 방문하기도 한다”며 “맥주와 안주를 사서 수변에서 먹는 나들이객도 많아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강공원 측은 비는 그쳤지만 수위가 높은 만큼 통제선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5시쯤 한 20대 남성이 음주를 한 뒤 한강 둔치를 방문했다가 자전거 도로 옆에서 강물에 빠져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한강 수위가 높아지고 흙탕물로 변해 수색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강공원 곳곳에서 위태로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지만, 계도나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한 관계자는 “생태공원 등 일부 지대가 낮은 지역에 대해서 통제선을 설치했다. 평소에는 낚시가 가능하지만, 최근 폭우로 시민들의 안전을 우려해 현재는 못 하게 하고 있다”며 “벌금은 부과하지 않고 있고, 민원이 들어올 때 순찰을 돌면서 계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계원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교수는 “집중호우가 발생했을 때 강의 수위가 올라가면 비가 그친 뒤에도 급류 형태를 띠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유속의 크기가 강하기 때문에 자칫 실족하면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고, 구조도 어려울 것”이라며 “화재나 지진 등 다른 재난에 비해 폭우에 대한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