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소 유리창에는 ‘매매’ ‘임대’ 글씨가 적힌 전단지가 빼곡히 붙어있었다. 이곳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박모(32)씨는 한두 달 새 상가 매물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했다. 박씨는 “코로나가 잠잠해졌는데도 대학 상권이나 유흥가 할 것 없이 공실이 생기고 있다”며 “예전엔 배달서비스를 안 하는 곳 위주로 장사를 접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엔 물가 상승 때문에 유지가 안돼 많이 폐업하는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를 견뎌냈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고물가·고금리에 ‘줄폐업’을 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로 경영난이 심화된 가운데, 원재료 값과 금리까지 오르자 운영 부담에 폐업이 속출하는 것이다.
국내 최대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따르면 최근 1개월간 매물로 등록된 점포의 수는 4048개에 달한다. 전달(1973개)과 비교해 한 달 새 105%(2075개) 증가한 것이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6배 정도 증가한 수준이다.
경기 성남시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모(35)씨도 최근 들어 가게를 내놓는 자영업자가 크게 증가했다고 했다. 김씨는 “이번 달만 해도 전달 대비 10% 정도는 공실률이 높아진 것 같다”며 “2, 3층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폐업률이 높아졌고, 스크린 골프나 헬스장 같은 체육시설도 많이 문을 닫았다”고 했다. 그는 “아무래도 매출이 오른 정도에 비해 식자재 가격이나 인건비가 큰 폭으로 뛰다 보니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폭등하는 물가도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5.4%로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급등기였던 2008년(4.7%)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도 밝혔다.
대출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것도 문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60조7000억원으로,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말보다 40.3% 늘었다. 정부의 금융지원도 올해 9월 종료가 예상되는 가운데, 손실보전금 지급이 중단될 경우 저소득 자영업자의 채무 상환 위험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이미 한계 상황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이 ‘보복소비’를 기대하며 버텨왔지만, 고물가·고금리라는 쓰나미를 맞으면서 줄줄이 폐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코로나19 기간 동안 자영업자들의 재기를 위해 지원책을 써왔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정부 지원으로는 회복이 안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며 “현재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거시적인 국제 이슈로 야기된 만큼 단기적인 지원책을 내놓기보다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안고 있는 고비용 구조를 해결해주기 위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