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사립대 중어중문학과에 재학중인 송모(22)씨는 지난 학기부터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다. 인문계 전공에만 머무르는 것보다 개발이나 데이터 분석을 배워두면 취업이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송씨는 “최근 들어 (프로그램) 개발이나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어 취업 문턱을 낮추고자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게 됐다”고 말했다.

컴퓨터 관련 직무 채용 수요 증가로 인문·사회계열 대학생의 컴퓨터공학 복수전공 선택이 늘고 있다. 대기업 공채 폐지 등으로 사무직 채용 수요는 그대로거나 축소된 반면 AI(인공지능)나 SW(소프트웨어) 개발 같은 컴퓨터 관련 직무 채용 수요는 늘어나 ‘교차전공’이 대세가 된 것이다.

네이버 2022 신입 및 인턴 개발자 채용 공고./네이버 제공

아예 일부 대학에서는 컴퓨터공학과가 복수전공 인기도 1위 학과로 부상했다. 그 뒤를 통계학과 등이 잇고 있다. 문턱도 덩달아 높아져 1, 2학년 때 학점 관리를 잘해야만 이들 학과에 복수전공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인문·사회계열에서 가장 인기있고 문턱이 높은 학과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등 상경계열이었다면 이제는 인문·사회계열 내부에 안주하는 것으로는 취직이 힘들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 선호도 최상위권 기업이 과거 공기업이나 삼성전자, 은행 같은 곳에서 ‘네쿠카라배’, 즉 네이버, 쿠팡, 카카오, 라인, 배달의민족 등 IT에 기반한 플랫폼 기업으로 바뀐 점도 컴퓨터공학 복수전공 유행에 불을 지폈다. 이런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선 코딩을 비롯한 컴퓨터공학 관련 지식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사립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홍모(23)씨 역시 이번 학기부터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기 시작했다. 홍씨는 “개발자들의 몸값(임금)이 치솟는 걸 보면서 미래 전망이 좋은 컴퓨터공학과에 발을 들이고 싶어졌다”며 “전공은 경제지만 딥러닝(심층 학습) 분야에 흥미가 생겨 관련 대학원에 진학한 후 연관 직무로 나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단순히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학과 지식을 SW나 AI 등 기술 분야와 융합해 학습하는 연계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교육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김모(21)씨는 이번 학기부터 SW연계 전공을 선택했다. SW연계전공과정은 소프트웨어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며 SW분야와 다양한 비IT 분야를 창의적으로 융합하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과정이다. 김씨는 “인문계라서 고민이 있었지만, SW 전공을 통해 배운 데이터 분석 방법이 교육공학의 ‘학습분석학’을 공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며 “앞으로도 교육공학 분야 심화 학습하기 위한 도구로서 SW를 공부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인문·사회계열 대학생들은 이 같은 추세가 자신의 전공에만 머무르면 취업이 ‘하늘에 별 따기’인 세태를 반영했다는 반응이다. ‘문송합니다’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컴퓨터공학과나 통계학과 등을 선택해 관련 지식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기업들이 대졸 공채 제도를 폐지하고, 문과 취업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금융권 역시 개발 관련 인력 채용에 집중하는 등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의 취업의 문은 극도로 좁아졌다.

전문가들은 모든 분야가 ‘디지털화’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은 필수이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은 점점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정연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석학교수는 “요즘은 컴퓨터공학을 주전공하는 학생이 100명이라면,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할 정도로 수요가 어마어마한 상황”이라면서 “최근 들어 기업 인사팀에서도 SW를 이해하는 인재를 원할 정도로, 모든 기업 모든 직군이 컴퓨팅 사고능력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컴퓨터공학과 뿐만 아니라 빅데이터 연계 전공, AI 연계 전공, SW 연계 전공 같은 컴퓨터 관련 연계 전공들도 늘어나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다양한 통로로 실력을 기르는 추세”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