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법이 모든 미혼부 가정 아이의 출생신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법은 아닙니다. 그저 재판 받을 기회를 열어줬을 뿐이죠.”
한부모 가족의 날인 5월 10일을 나흘 앞둔 6일 오전 10시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김지환(45) ‘아빠의 꿈’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기자를 만나자 마자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미혼부들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적지 않은 미혼부가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정신적인 고통까지 겪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사랑이 아빠’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이 미혼부이기도 한 김 대표는 사랑이의 출생 신고를 하기 위해 2013년부터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와 미혼부의 권리를 외쳤다. 당시만 해도 미혼부는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할 기회조차 없었다.
김 대표의 노력 끝에 2015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고 미혼부가 생모의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등을 모르더라도 유전자 검사서를 제출해 자신이 친부임을 입증하면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고 출생신고가 가능해졌다. 이 법은 김 대표의 딸의 이름을 따서 이른바 ‘사랑이법’으로 불렸다. 이후 김 대표는 자신 같은 미혼부 가정을 돕기 위해 2019년 ‘아빠의 품’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사랑이법’이 만들어진 지 이미 7년이 지났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미혼부 가정의 어려움이 크다고 이야기했다. 사랑이법이 있음에도 법원에서 친부를 인정받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미혼부가 법원에 신청한 ‘친생자 출생을 위한 확인’ 청구 690건 중 129건은 기각됐다. 5년 간의 긴 소송 끝에 출생 신고가 받아들여진 예도 있었다.
김 대표는 이런 사례를 하나씩 언급하며 “기다리다 지쳐서 양육을 포기하는 미혼부도 있다”고 전했다.
만약 아이의 친모가 혼인한 상태거나 이혼 후 300일 이전에 낳은 아이라면 또 다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친생자 추정 원칙을 규정한 민법 844조에 따라 아이는 생모의 법적 남편의 아이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법적 남편이 아이 친부가 아님을 증명해야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다. 친모와 법적 남편의 협조가 필요해 기약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미혼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한 미혼부는 건설현장에서 현장 반장으로 일하며 일당으로 20만원을 받았지만 아이를 양육하기 시작하면서 모두 포기해야 했다. 어린이집이나 아이 돌봄 서비스를 모두 이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복지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런 사연을 전하며 “누가 옆에서 매일 아이를 맡아주지 않으면 혼자 양육을 한다. 갓난아기는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아무리 안전한 공간이라고 해도 애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혼부들이 엄청난 복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며 “출생 신고만 되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소일거리라도 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한부모 가정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사회적 편견도 미혼부와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김 대표는 “아빠들이 아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가면 아이를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랑 왔냐’며 묻기도 한다”며 “악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이에겐 상처가 되기도 한다”고 답했다.
김 대표는 어른들 문제로 아이들이 고통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 입장에서 볼 때 아빠가 대한민국 국민인데 아이는 왜 ‘유령’이 돼야 하느냐”며 “아이에게 먼저 국적과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해 제도권 안에서 보호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이어 “어른들의 사정은 어른들끼리 나중에 잘잘못을 따지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미혼부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 대표는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것은 없다”면서도 “그래도 아이가 자라면서 조금씩 삶이 나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조급해 말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라. 답답하고 힘든 것은 잠시 잊으시고, 포기하지 마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