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서울 내 상권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한때 ‘오피스 번화가’의 대명사였던 명동 인근 상권은 방문객의 발걸음이 끊기고 매출이 줄면서 버티다 못한 매장들이 하나 둘 상권을 떠났다. 화려한 밤거리를 자랑했던 명동은 이젠 ‘밤만 되면 유령도시 같다’는 오명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노량진과 가락, 가양 등 도심에서 떨어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상권은 오히려 유동인구가 늘고 매출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홈쿡(집에서 요리하기)’ 트렌드로 매출이 늘거나 새로 건축된 상가의 영향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노량진수산물시장의 모습(위)과 지난 3일 명동 오피스 상권(아래)의 모습. /채민석 기자

◇명동·역삼·강남 “유동인구·점포 수 모두 줄어”

지난 3일 오후 7시, 퇴근을 마친 직장인들로 활기를 띠어야 할 서울 중구 명동 거리는 적막할 만큼 텅 비어있었다. 간간이 행인 무리가 오가기는 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된 이후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모습이었다.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55)씨는 “남은 사람보다 떠난 사람이 많은데, 다시 이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찰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남 상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 4일 강남 상권의 대표주자 격인 역삼1동 번화가 가게들에는 ‘임대’라는 문구가 줄줄이 붙어있었다. 역삼1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57)씨는 “(매장) 바로 밑의 가게와 맞은편 가게가 문을 닫은 지 한 달도 안 됐다”며 “코로나19로 가게를 찾는 손님이 줄어 경영난에 시달리다 폐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서울신용보증재단이 운영하는 상권분석시스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2021년 4분기 길단위 유동인구 수는 지난 2019년 4분기 대비 모든 자치구에서 하락세를 보였지만, 가장 높은 하락률을 기록한 서울 내 자치구 중 중구였다. 중구의 유동인구는 1헥타르(㏊)당 5만5261명에서 4만5521명으로 13%가량 줄어들었다. 특히 중구 내에서도 명동이 -29%로 하락률이 가장 높았고, 이어 인근 상권인 회현동이 -22%, 소공동이 -20%를 기록했다. 소공동은 매출에서도 큰 하락세를 보여 2019년 상권 매출 합계 2조2500억원을 기록했었지만, 2020년에는 1조9800억원에 불과했다.

강남구 또한 유동인구가 헥타르당 3만6242명에서 3만4124명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강남구는 가장 높은 외식업 점포 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강남구 소재의 외식업 점포 수는 2019년 1만4895개에서 2021년 4분기에 1만3949개로 줄어들었다. 4071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던 역삼1동은 2021년 4분기 들어 2954개로 뚝 떨어져 27%의 하락률을 보였으며, 유동인구 또한 헥타르당 7만7904명에서 6만8691명으로 줄어들었다. 매출도 2019년 상권 매출 합계가 2조1100억원이었지만, 2020년 1조9900억원으로 하락했다.

서울시 정책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은 도시 연구 전문지 ‘서울도시연구’를 통해 명동과 강남 등 주간인구 비율이 높고 심야인구 비율이 낮은 업무지구는 코로나19로 인해 회식이 제한되고 재택근무가 활성화 되면서 전년 대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4일 강남역 인근 역삼1동 거리에 '임대'로 나온 한 가게의 모습(위)과 마곡나루역 인근 가양1동 상권에서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가게(아래)의 모습. /채민석 기자

◇노량진·가락 “‘홈쿡’ 트렌드 영향 쏠쏠”… 가양 “상가 활성화”

명동·강남 등 오피스 상권과는 반대로 노량진과 가락동 등 대형 농수산물시장을 포함하고 있는 상권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노량진2동에 위치한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과 신노량진시장의 상인들은 되레 코로나19 이후로 매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나모(67)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잠시 매출이 줄었지만, 1년 내로 바로 회복했다”면서 “외식을 하던 사람들도 집에서 식사를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이 근방에 있는 상점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동작구 노량진동이나 송파구 가락동 상권 등은 ‘홈쿡’ 영향으로 식재료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 농수산물시장의 매출이 대폭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노량진동의 경우 2019년 행정동별 상권 매출 합계 1조600억원이었지만, 2020년 1조4600억원으로 대폭 상승했으며 외식업 점포 수도 2019년 289개에서 2021년 340개로 늘어났다.

서울연구원은 노량진동과 가락동의 매출이 특별히 증가한 이유로 ‘홈쿡 트렌드’를 꼽았다. 코로나19로 외식을 자제하고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홈쿡’ 트렌드로 인해 노량진2동에 위치한 농수산물시장의 매출이 증가한 것이다. 노량진동이 포함된 번화가 상권의 경우 외식업종 매출이 약 17% 감소했음에도 식료품점·슈퍼마켓·청과상 등 홈쿡 관련 업종의 매출이 지난해 대비 30~40% 증가했다. 또한 상권 총 매출이 타 상권에 비해 적은 상권임에도 홈쿡 업종의 매출 증가액은 타 상권의 2배 이상을 기록했다. 가락동의 경우 홈쿡 업종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특수로 매출이 상승한 리빙 업종도 다수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트렌드 변화를 빅데이터 분석으로 미리 예측해 창업을 한 자영업자들도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상권별 희비가 명확해지면서 이른바 ‘똑똑한 창업’이 자영업자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 노량진 인근에 주점을 개업한 30대 윤모씨는 처음에는 집 근처인 노원구에 창업을 하려고 했다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매출과 유동인구가 늘고 있는 노량진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윤씨는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회복되고, 유동인구 수가 많은 지역을 고르다 보니 이곳(노량진)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수산시장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나온 손님들이 2차를 하러 가게를 찾는 경우가 늘어 현재까지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 가양1동은 최근 상가가 들어서면서 창업을 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일 마곡나루역 인근 상권의 한 건물에는 신규 입점한 가게 두 곳이 개업을 위한 공사를 한창 벌이고 있었다. 상권 내에 있는 한 부동산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며 상권이 활기를 띠고 있다”라며 “오늘도 상가 입점 문의가 벌써 5건 들어왔다”고 말했다.

강서구는 2019년 4분기 6421개였던 외식업 점포 수가 2021년 4분기 7135개로 늘어 11%의 성장률을 보이며 점포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자치구에 올랐다. 특히 마곡나루 인근 상권의 가양1동은 25%라는 상승률을 보여줬다. 유동인구 또한 헥타르당 2019년 4341명에서 2021년 4492명으로 3.5%가량 늘었다. 강서구 관계자는 “해당 상권에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사업자들이 공실을 채우기 시작해 점포 수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영수 서울신용보증재단의 소상공인 정책연구센터장은 “소상공인들을 위해 카드 가맹점 수를 바탕으로 최신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가장 먼저 상권의 유동인구를 파악하고 매출을 본 뒤 마지막으로 점포 수를 확인하는 것이 기본적인 상권 분석의 과정이다. 점포 수는 상권에 대한 마지막 지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