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19년 4월 17일 안인득이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와 흉기난동으로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지 100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안인득은 조현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안인득 사건 이후 ‘조현병 포비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심이 커졌다. 하지만 안인득은 살인자 이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환자였다. 전문가들은 안인득이 제대로 된 관리와 치료를 받았다면 이런 끔찍한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로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부른 지 10년이 됐다. 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병명을 바꿨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조현병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적절히 관리하지도 못하고 있다.
살인·살인미수·현주건조물방화치상·현주건조물방화·특수상해·재물손괴·폭행·특수폭행.
안인득의 혐의들이다. 법원은 안인득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 1심에선 사형, 2심에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그는 지금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안인득의 삶은 언제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한 걸까. 법원의 판결문과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일생을 재구성해봤다. 우리 사회가 언제 안인득의 삶에 개입했어야 ‘안인득’이라는 괴물의 탄생을 막을 수 있었을지, 그리고 안타깝게 사라진 목숨들을 지킬 수 있었을지 짚어봤다.
안인득은 1977년 7월 경남 진주에서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집안은 가난한 편이었고, 안인득이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가출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안인득이 20대이던 2002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성적은 좋지 않았고 한때 체육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다 포기했다.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고, 만 18세였던 1995년 12월에는 본드흡입으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아 소년원에 다녀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2년 뒤였다.
안인득은 방위산업체 근무로 군복무를 해결했고, 이후 자동차정비공장, 제조공장, 대기업 하청업체 등을 전전하며 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2008년 한 전자업체 공장에서 상차업무를 하다가 디스크 협착증에 걸리면서 문제가 생겼다. 안인득은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산재처리가 되지 않았다. 그 뒤로 안인득은 피해의식이 심해지고, 회사 관계자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대인관계를 방해한다는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가 ‘괴물 안인득’을 막을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로 본다. 차승민 국립법무병원 전문의는 “안인득은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피해망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때 바로 꾸준한 치료를 받았으면 훨씬 경과가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현병은 전 세계적으로 1%의 유병률을 가지는 정신질환이다. 남성의 경우 10대 후반에서 20대 사이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인득이 피해망상 증상을 보인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하지만 안인득은 당시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았다. 병식(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전혀 없었고, 주위에서도 챙기지 않았다.
안인득이 조현병 진단을 받은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0년 8월이다. 그는 2010년 5월 길거리에서 마주친 행인을 회사에서 자신을 감시하라고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칼을 휘둘렀다. 안인득은 이 사건으로 입건됐고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았는데 이때 조현병 진단을 처음 받았다. 보호관찰소는 안인득에게 강제입원조치를 권유했지만, 실제 안인득이 강제입원된 건 2011년 1월이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조현병 발병 후 치료까지 권장 기간을 12주로 제시한다. 안인득은 초기 치료의 적기를 완전히 놓쳤다. 국내에서 조현병 발병 후 치료받기까지 평균적으로 56주가 소요되는데 이보다도 더 늦게 안인득은 치료를 시작한 셈이다.
차승민 전문의는 “한국은 (정신)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편견도 있다보니 치료의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나쁜 사람을 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예방하는 것도 중요한데 조현병 환자의 치료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현병을 극복한 과정을 담아낸 ‘바울의 가시’를 쓴 이관형 작가도 “조현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고 말했다.
안인득은 강제입원 조치가 된 2011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는 꾸준히 조현병 치료를 받았다. 이 기간에 모두 68차례에 걸쳐 치료를 받았다. 강제입원 이후 가족과 사이가 나빠졌지만 특별한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교수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약물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안인득이 한 번도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 기간에 안인득은 일상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2012년 3월에 한 고등학교에 입학해 2015년 2월 졸업했는데 110여명의 재학생 중 4~5등의 성적이었다고 한다. 2012년 3월에는 굴삭기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중장비학원에 다녔고, 그해 합격하기도 했다.
안인득이 다시 문제를 일으킨 건 2018년 9월이다. 그가 살던 아파트 입주민들은 안인득이 오물을 투척하는 등 이상행동을 한다고 신고했다. 조용하게 지내던 안인득은 왜 다시 문제를 일으킨 걸까.
병원의 치료 기록에 따르면 안인득은 2016년 7월 28일을 마지막으로 조현병 치료를 중단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를 ‘괴물 안인득’을 막을 수 있었던 두 번째 기회로 본다. 백종우 교수는 “안인득은 보호관찰을 받은 기록이 있고, 범죄 경력도 있는 환자였는데 외래진료를 스스로 중단했다면 지자체 차원에서 모니터링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논문 등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가 투약을 중단할 경우 1년 내에 재발할 확률이 30%에 달한다고 한다.
마지막 기회는 2019년 초였다. 안인득은 2018년 9월부터 심각한 피해망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아파트 입주민들을 괴롭혔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찰에 수 차례에 걸쳐 신고한 것도 이 때다. 전문가들은 이 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안인득에 대한 신원조회를 해서 행정입원 조치를 취했다면 최악의 사고는 막을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백종우 교수는 “그때 신고를 받고도 그냥 돌아간 경찰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건 아니지만, 본인이 거절할 경우 조현병 환자를 정신응급센터로 이송할 수 있는 권한은 경찰만이 가지고 있다”며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은 가족이 아니라 국가가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인득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세 차례에 걸쳐 임상심리평가와 정신감정이 이뤄졌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법과학분석과 심리분석관의 임상심리평가, 치료감호소의 정신감정, 창원지검 진주지청 의료자문위원인 정신과 전문의의 자문 등이다. 이 중 진주지청 의료자문위원을 맡은 정신과 전문의는 조현병 환자가 인지능력, 사물변별능력이 있음에도 ‘심신미약’ 판정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조현병 환자의 현실 검증력은 정신병적 증상의 심한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조현병 환자 전체를 일반화해 평가할 수 없다. 정신과적 증상이 심하다면 의학적인 심신미약 판정을 할 수 있다. 망상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망상에 의래 감정표현이나 폭력을 행한 것을 현실 판단력의 저하로 보고, 이렇게 현실 판단력 및 현실 검증력이 저하된 것을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문장을 덧붙였다.
“조현병은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치료되거나 호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