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법률사무소(김앤장), 율촌, 광장 등 국내 대형 로펌들이 ‘재량 근로제’ 도입을 둘러싸고 내부 진통을 겪은 것으로 31일 전해졌다.

재량 근로제는 업무 수행 방식을 근로자에게 위임할 필요가 있는 직군에서 실제로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노사 합의로 정한 만큼을 근로 시간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신입 변호사들이 야근을 밥먹듯 하고 있는 로펌의 경우 주52시간 근무제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재량 근로제가 논의돼 왔다.

광화문에서 출근하는 직장인. / 뉴스1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김앤장은 경력 2~5년차인 주니어 변호사들과 재량 근로제 도입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율촌은 5년 전에 도입한 재량 근로제를 앞으로 3년간 더 실시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광장도 재량 근로제 연장 실시를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앞서 상당수 국내 대형 로펌들은 지난 2020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앞두고 주니어 변호사들과 재량 근로제 도입에 합의한 바 있다. 로펌 소속 변호사들은 이른바 ‘9 to 6(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한 직종 중 하나로 꼽힌다. 고객이 원하면 밤낮 없이 수사 및 재판, 각종 자문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로펌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면 현실적으로 로펌이나 변호사나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재량 근로제에 서로 합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재량 근로제 합의 과정에서 로펌과 주니어 변호사 간에 ‘밀고 당기기(밀당)’가 상당한 수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율촌과 광장의 경우 내부 협상 과정에서 재량 근로제 도입 안건이 한 두차례씩 부결됐다고 한다.

율촌과 광장의 경우 2019년 재량 근로제 도입을 할 때 5년을 기한으로 합의해 이번에 기한 연장을 논의해야 했다. 5년 전에도 재량 근로제 도입에 부정적인 주니어 변호사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부정적 의견이 더 강하게 표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형 로펌의 3년차 변호사는 “주니어 변호사들은 파트너의 지시를 받아 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재량껏 일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재량 근로제를 도입하면 시간외 수당도 못 받게 돼 불리하다”고 했다. 이번에 율촌은 연봉 인상 등 추가 인센티브를 주는 조건으로 재량 근로제 3년 연장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로펌의 중견 변호사는 “주니어 변호사들이 재량 근로제에 합의하는 대신에 미국 연수 전원 보장 등 성과와 상관없이 혜택을 달라는 취지의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는 “대형 로펌의 초임 변호사가 연봉으로 2억원을 받기도 하는데 이 정도면 대기업 임원급 대우”라며 “재량 근로제 도입 합의에 조건을 다는 게 맞는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