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에서 첫 ‘전부 승소’ 판정을 지난 5월 말에 받았다. 중국인 투자자가 2641억원을 청구했지만 우리 정부는 한 푼도 지급하지 않게 된 것이다. ISDS는 외국 투자자가 투자를 진행한 나라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법령·정책 등으로 투자 관련 손해를 입었을 경우 손해배상 등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우리 정부의 ISDS 첫 ‘전부 승소’ 사건은 법무법인 율촌이 대리했다. 율촌 국제분쟁팀의 백윤재(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 안정혜(35기) 변호사와 우재형(39기) 변호사는 “한국 법원에서 진행된 소송 절차의 적법성이 정면으로 다뤄진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법무법인 율촌 국제분쟁팀의 백윤재(사법연수원 14기)·안정혜(35기)·우재형(39기) 변호사. /율촌 제공

◇국내 민·형사 재판 받은 中 투자자 “수사·재판 절차 위법” 주장

이 사건은 중국인 투자자 A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한 것이다. A씨는 지난 2007년 중국 부동산 인수를 위해 우리나라에 회사를 설립하고 우리은행 등 국내 금융회사로부터 사업 자금을 대출받았다. 이후 A씨는 우리은행이 채무 상환 기한을 6차례 연장했음에도 채무를 갚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담보물에 대한 권리를 행사해 해당 회사의 주식을 외국 회사에 매각했다.

A씨는 ISDS 중재 요청에 앞서 우리은행이 자신의 주식을 처분한 것에 대한 적법성을 따져 달라며 민사재판을 청구했다가 지난 2017년 대법원에서 패소를 확정받았다. 또 A씨는 대출을 받으려던 은행 임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등 위법 행위가 문제되면서 증재, 횡령, 배임,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같은 해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확정받았다.

결국 A씨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하면서 한국 정부가 한·중 투자협정상 ‘공정·공평 대우’ 의무 등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우리은행의 담보권 행사가 위법하게 이뤄졌고 ▲국내 법원의 위법한 민 ·형사 재판과 수사 절차로 자신의 투자가 침해됐으며 ▲이는 우리 정부가 한·중 투자협정의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A씨는 처음에는 2조원을 청구했지만 이후 2641억원으로 액수를 낮췄다.

◇법무법인 율촌, ‘애초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불법 투자’ 입증

ISDS에서 우리 정부를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의 안정혜 변호사는 “사실 관계를 치밀하게 발굴하고 체계적인 법 논리를 개발해 A씨 주장에 맞섰다”고 말했다. 율촌 국제분쟁팀은 ▲A씨가 설립한 회사는 분쟁 초기 단계부터 부실 대출을 받을 불법한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로 한·중 투자협정상 보호되는 투자에 해당하지 않고 ▲문제된 우리은행의 행위는 대한민국에 귀속되지 않으며 ▲법원의 판단과 수사 기관의 수사 등은 모두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ISDS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투자자의 투자 행위가 당사국 간 투자협정상 보호되는 ‘투자’에 해당해야 한다. 한·중 투자협정 제1조는 양국 투자자의 ‘투자’에 대해 ‘투자 유치국의 법령에 따른 투자여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A씨 투자는 국내에서 소송을 거쳐 형사 처벌까지 받은 ‘불법 투자’였다.

율촌의 우재형 변호사는 “A씨가 투자자가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투자는 당초부터 불법 목적에서 이뤄졌던 투자라는 점에서 한·중 투자협정에 따라 보호되는 투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고 했다.

또 율촌은 ISDS는 투자자가 투자국을 상대로 제기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 정부가 우리은행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은행의 행위를 대한민국의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우재형 변호사는 “A씨의 투자와 관련한 대출, 담보권 실행, 소송 절차 등 사실 관계에 정부가 관여했던 것이 아니다 보니, 은행 등을 통해 협조를 받아 사실 관계를 정리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아울러 율촌은 A씨에 대한 국내 수사·재판 절차가 적법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과거 재판 및 수사 기록을 직접 수집하고 일일이 확인했다. 안정혜 변호사는 “국가마다 수사 및 법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A씨가 주장한 국내 수사와 소송 절차의 위법성에 대해 반박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며 “법관 출신 교수 등 전문가 의견서와 은행, 수사 기관 등으로부터 협조를 받아 모은 증거들을 통해 모든 절차가 대한민국 법과 국제법에 비춰 적법하다는 점을 입증해 냈다”고 했다.

◇”한국 수사·재판 적법성 입증… 투자에 적합한 국가로 자리매김”

결국 4년간 서면 공방과 구술 심리를 거친 끝에 ISCID 중재 판정부는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줬다. 판정부는 A씨에게 한국 정부가 소송 대응에 부담한 법률 비용과 중재 비용 중 약 49억원도 이자와 함께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 판정에 대해 법무부는 “‘국내법상 위법한 투자는 ISDS에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판정은 본안 심리 절차까지 진행해 한국 정부가 전부 승소한 최초의 ISDS 사건이다. 앞서 우리 정부는 외국계 펀드 론스타, 엘리엇, 메이슨 등과 중재 재판에서 잇따라 일부 패소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율촌의 백윤재 변호사는 “대한민국 법원의 재판 및 수사기관 수사 절차의 적법성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도전을 저지했다는 의미가 크다”면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투자에 적합한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