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환자라면 누구나 아는 치료제가 있다. 한국의 제약회사 보령에서 만든 카나브(Kanarb)다. 카나브는 2010년 보령에서 선보인 국내 첫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이 되기까지 시간은 약 18년, 비용은 500억원이 들었다. 세계 50개국에서 ‘고혈압 약=한국’이라는 공식을 남긴 카나브는 지난해 15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카나브는 출시된 지 5년 만에 듀카브로 진화했다. 카나브에 암로디핀(amlodipine)이라는 약물을 더한 듀카브는 혈압 강하에 더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수축기 혈압(심장이 수축할 때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을 떨어트리는 효과는 카나브의 2배 이상, 혈압 조절률도 기존 약의 1.5배 이상으로 나타난 듀카브는 원인 불명의 본태성 고혈압까지 ‘치료 가능’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약효가 입소문을 타면서 듀카브는 보령의 새로운 효자가 됐다. 출시 첫 해 1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한 듀카브는 지난해 매출 500억원을 돌파했다. 카나브와 함께 중남미·아시아 국가들로 뻗어가면서 ‘K-신약’ 반열에도 이름을 올렸다.

고혈압 신약 듀카브. /보령

동시에 듀카브는 국내 다른 제약사들의 타깃이 됐다. 50여개의 제약사들이 듀카브의 특허를 회피하면서 제네릭(복제약)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제네릭사들은 특허심판원에 소극적 권리범위 확인 심판을 냈다. 자신들이 선보인 제품이 특허권자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특허심판원을 통해 입증하는 심판을 제기한 것이다. 보통 이 심판을 제기하는 쪽은 치밀한 준비를 마친 상태기 때문에, 제약업계와 법조계에서는 보령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보령 측은 특허심판원 단계부터 이후 이어진 재판 단계까지 듀카브 특허를 지켜냈다. 그 주축에는 박금낭(사법연수원 31기) 변호사가 이끄는 법무법인 광장의 헬스케어팀이 있었다. 박 변호사는 “한국의 오리지널 제약사가 다수의 제네릭사를 상대로 한 대규모 분쟁에서 특허권을 지킨 첫 사례”라며 “신약 연구개발(R&D)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갖은 어려움을 딛고 나온 신약인 만큼 특허로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승소 소감을 전했다.

◇ 약사 출신 변호사가 직접 대리…”듀카브 ‘뚝딱’ 발명된 것 아냐”

서울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해 동 대학원에서 약물학 석사 학위까지 받은 박 변호사는 제약·바이오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약사 출신 변호사’다. 약물학 공부에 오랜 시간을 보낸 그는 ‘신약 개발’의 어려움을 몸소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도 이 점에 주력했다. 듀카브가 하루아침에 ‘뚝딱’ 나온 제품이 아니라는 점을 재판부에 피력했다.

박금낭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가 지난달 20일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법무법인 광장 제공

박 변호사는 듀카브 발명자를 여러 차례 만나, 제품을 발명하기까지 그가 겪은 고초를 직접 듣고 법정에서 전했다. 그 중 하나가 ‘고혈압 쥐’를 갖고 하는 동물 실험이다. 고혈압 쥐는 선천적으로 고혈압을 갖고 있는 쥐로 고혈압 치료제 개발을 위한 실험 동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쥐로 하는 실험이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고혈압으로 인해 굉장히 예민한 쥐를 해외에서 들여와 안정화 단계를 거치고, 치료제를 투약하고, 혈압을 재는 과정에서 쥐가 돌발행동을 하거나 죽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아주 민감한 고혈압 쥐를 데려와 실험에 성공하기까지 실험자들이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지를 재판부에 상세히 전달했다”며 “고혈압 쥐로 직접 실험에 성공한 사례가 국내외에 많지 않은 데도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도전하고 발명에 성공한 보령이 국내외 제약업계에 세운 공이 작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보령의 우여곡절을 어깨 너머로 들은 법원은 결국 듀카브의 특허성을 인정하는 결론을 냈다. 특허법원은 지난해 11월 30일 40여개의 제네릭사가 제기한 권리 범위 확인 및 특허 무효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하고 특허 침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광장 측이 주장한 특허 ‘균등 침해’ 법리를 받아들였다. 균등 침해는 특허 발명의 실질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법리로, ‘문언 침해’ 논리로만 판단할 경우 나타나는 불합리성을 보완하기 위해 쓰인다.

문언 침해는 특허 발명 청구서에 기재된 내용과 글자 그대로 개발해야만 특허 침해를 인정하는 식의 판단 방법이다. 제네릭사는 제네릭 제품의 카나브와 암로디핀 조합 배율이 듀카브의 배율과 다르므로 문언 침해가 아니라는 논리를 폈지만, 재판부는 ‘카나브+암로디핀’이라는 듀카브의 성분 조합 자체에 특허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특허의 ‘균등 침해’를 인정했다.

◇ “신약 특허 보장해야 희귀병 고칠 혁신적인 약 나와”

박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특허 청구서에 쓰인 대로 개발된 제품이 아니더라도 발명의 기술적 측면에 근거해 특허의 유효성을 판단하고 특허 침해를 인정한 보기 드문 사례”라며 “이를 계기로 국내 신약 특허를 좀 더 전향적으로 보호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그는 특허가 보호돼야만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신약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변호사는 “장기적으로 더 많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보령처럼 리스크를 감수하고 신약을 개발하는 곳이 나와야 하는데, 특허가 보호되지 않는 이상 다들 ‘베끼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상황을 우려했다.

이어 그는 “특히 우리나라처럼 신약 연구 개발이 일천한 곳일 수록 신약의 특허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희귀병, 불치병 치료제 개발에 나서는 업체들이 생길 수 있다”며 “신약 개발이 활발한 유럽이나 일본 같은 경우를 보면 특허 보호가 충실하다는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