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가 카카오로부터 2200억원을 투자 받기로 한 가운데, 대주주인 이수만 총괄프로듀서 측이 8일 오후 신주와 전환사채(CB) 발행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신청한다.
이 총괄 측은 SM엔터의 경영권 분쟁이 가시화한 상황에 제3자를 대상으로 신주와 CB를 발행해주는 것이 명백한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SM엔터의 현 경영진은 최근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와 손잡고 이 총괄과 경영권 다툼을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카카오까지 우군으로 끌어들인 것은 대주주인 이 총괄의 지분을 희석시키고 지배력을 낮추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게 이 총괄 측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카카오의 이번 지분 투자 목적을 규명하는 것이 법적 다툼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 상법 “경영상 목적 있을 때만 제3자에 신주·CB 배정 가능”
SM엔터는 카카오에 제3자배정방식으로 신주 1119억원어치와 1052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발행하기로 결의했다고 지난 7일 공시했다. 제3자배정 증자 목적은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입지와 제휴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CB의 전환 청구는 내년 3월 6일부터 8일까지 가능하다. 전환권이 행사된다면, 카카오는 SM엔터 지분 9.05%를 보유해 단숨에 이 총괄(18.46%)에 이어 2대 주주에 오르게 된다.
SM엔터의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이 총괄은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법적 대리인 법무법인 화우는 얼라인파트너스와 이 총괄 간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얼라인과 손을 잡은 이성수·탁영준 SM 공동대표가 제3자에게 신주와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총괄 측에서는 SM 이사회가 제3자에게 일방적으로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배정해 현 경영진에 우호적인 지분을 확대하고 지배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 상법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상법 제418조 제1·2항은 “주주는 그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서 신주의 배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 회사는 (이 규정에 불구하고) 정관에 정하는 바에 따라 주주 외의 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도 있는데, 다만 이는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법 제513조 제3항은 “주주 외의 자에 대해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경우 그 발행할 수 있는 전환사채의 액, 전환의 조건, 전환으로 인해 발행할 주식의 내용과 전환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에 관해 정관에 규정이 없으면 제434조의 결의(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3분의2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1 이상)로써 이를 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경우에도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이 필요하다는 단서가 붙는다.
다시 말해,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신주나 CB를 발행하려면 ‘경영상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존 주주의 보유 지분 희석과 지배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다.
이는 지난 2019년 유에스알(USR)과 피씨디렉트 간 경영권 분쟁에서도 인정된 바 있다. 당시 피씨디렉트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제3자를 대상으로 신주와 CB를 발행해주자, 주요 주주였던 USR이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양측의 다툼은 대법원까지 갔고 신주 발행은 무효화됐다.
당시 재판부는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 안에서 정관이 정한 사유가 없는데도 회사의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상법 제418조 제2항을 위반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 이수만 측 “SM 자금 조달 필요 없어”… 현 경영진, ‘전략적 제휴’ 내세워 맞설 듯
이처럼 상법이 ‘경영상 목적’이 아닌 경영권 분쟁을 목적으로 제3자에게 신주나 CB를 발행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에서는 카카오의 신주와 CB 인수 목적을 밝히는 것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 총괄 변호인 측에 따르면, SM엔터의 정관에는 ‘긴급한 자금 조달 등 경영상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신주 또는 전환사채의 제3자배정을 허용한다고 적시돼있다. 법무법인 화우 측 변호사는 “SM엔터의 작년 3분기 공시 자료를 보면 사내유보금만 2800억원이 있어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면서 “설령 자금 조달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상법에 따라 주주배정을 통해서 하면 되지, 왜 경영진이 회사의 지배권에 영향을 미치면서 제3자에게 임의로 배정해야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카카오가 신주와 함께 굳이 CB를 인수한 것도 정관에 적힌 유상증자 한도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CB를 전환해 지분율을 끌어올릴 의도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SM엔터 경영진은 카카오의 투자 유치 목적이 ‘전략적 제휴’라며 맞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SM엔터 정관에서도 전략적 제휴를 위한 제3자배정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화우 측은 “전략적 제휴는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전략적 제휴가 반드시 지분 인수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한 전략 제휴 때문이라고 보기엔 카카오의 지분율(CB 전환 시 9.05%)이 지나치게 높다는 게 화우 측 주장이다.
화우 측은 통상적인 ‘전략적 제휴’의 경우 양측이 지분을 상호 취득한다고 설명했다. 하이브와 두나무가 대표적인 예다. 두 회사는 지난 2021년 상호 간 지분 매입을 단행했다. 하이브가 5000억원을 투자해 두나무 지분 2.48%를, 두나무는 7000억원을 들여 하이브 지분 5.57%를 취득했다.
한편, 화우 측은 카카오가 얼라인파트너스의 ‘우호 세력’인지 여부를 현 시점에서 입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카카오와 얼라인파트너스가 사전에 교류를 했거나 경영권 분쟁 참전에 동의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으며, 굳이 이 부분을 증명하지 않더라도 현 경영진의 결의가 상법에 위배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는 게 화우 측 입장이다.
다만,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얼라인파트너스의 우호 세력으로서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실제로 카카오는 지난해까지 이 총괄의 보유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조건이 맞지 않아 중도 포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