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은현

46억달러(한화 약 6조400억원) 규모인 론스타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한국 정부가 피소당한 첫 사례이자 10년 만의 결과인 만큼 어떤 결론이 나오든 국내 로펌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중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데다 승패가 곧 성적표로 남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국제중재 사건들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수임 경쟁 등과 연관돼 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로펌들은 이번 ‘론스타 사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대우일렉) 매각 분쟁, 다야니가(家)와의 ISD 첫 패소에 따라 한국 정부가 국제중재 대응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분위기가 한 차례 바뀐 바 있는데, 이번 론스타 사건도 몰고 올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인식 변화 이끈 다야니가 ISD 사건

한국 정부는 지난 10년간 9건의 ISD를 피소당했다. 2012년 론스타 사건을 시작으로, 2015년 하노칼이 국세청의 현대오일뱅크 주식 매각에 대한 과세에 문제를 제기한 사건, 2015년 다야니가 사건, 2018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이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투표에 반발해 제기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정부는 2018년 다야니가와의 ISD에서 패소했다. 이 사건은 다야니가가 대우일렉을 인수하려다 실패하면서 2015년 9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계약금 및 이자 935억원을 반환하라며 중재판정부에 ISD를 제기한 것이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채권단의 책임을 인정해 다야니 측에 계약금과 반환 지연이자 등 약 7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정부가 국제중재 사건을 중대 사안으로 인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법무부에 국제분쟁대응과가 신설되는 등 관련 시스템이 정비되기도 했다. 국제분쟁이 ‘상시적인 리스크’로 자리매김했다는 게 국제중재 사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형 로펌의 한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는 “‘국가 이익’ 관점에서 국제투자분쟁 사건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일반 소송의 한 분류로 인식하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의 이상엽 차장은 “국제중재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야겠다는 이야기가 또 한 번 분명히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상황과 로펌의 입지 변화

정부가 변하는 사이 시장도 변했다.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은 국제거래 비중이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 코로나19 여파로 파산·도산하는 회사도 많아졌다. 국제중재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데다 국제중재에 대한 중요도가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임성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론스타 사건도 해외 투자자가 한국 경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된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큰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0여 년째 투자를 이어온 로펌들 덕분에 국제중재 시장에서 국내 로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과거 외국 로펌들의 ‘코카운슬’(Co-Counsel·보조 자문기관)에 그쳤다면, 이제는 ‘리드 카운슬’(Lead Counsel·주도적 자문기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법무법인 세종은 ISD 사건에서 단독 대리인으로 사건을 맡기도 했다.

역량을 키우기 위해 로펌들 간 인재 영입전도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소 로펌의 국제중재 변호사는 “국제적 감각을 가진 외국 변호사 인력을 영입하는 로펌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다”며 “그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후 발행할 ISD 사건 수임을 위한 노력도 거세질 것”이라고 했다.

◇정예팀 꾸리는 대형 로펌들

론스타, 다야니가 사건 등에서 수임에 실패해 공을 들였던 법무법인 광장은 엘리엇-메이슨 사건을 대리 중이다. 임성우 변호사가 이끄는 광장 국제중재팀은 외국 변호사가 공동팀장을 맡고 있고, 다른 대형 로펌들의 핵심 인력들이 합류하기도 했다. 이들은 2조원에 달하는 교보생명-어피니티 컨소시엄 상사중재 사건 등 수차례 승소를 이끈 바 있다.

법무법인 세종은 세대교체가 잘 이뤄진 팀으로 평가받는다. 20여명으로 구성된 국제중재팀을 이끄는 김두식 대표변호사는 국제중재에 더해 국제통상, 국제투자 등 국내 법률실무계의 산증인으로 통한다. 세종 중재팀은 한국서부발전이 인도 정부를 상대로 낸 4000억원대 ISD에서 의미 있는 중간판정을 받아냈다. 이외 한전 관련 공기업의 중재사건도 맡고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국제중재팀은 60여명에 달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20년 넘는 베테랑 윤병철 변호사가 팀을 이끌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했던 ISD 중재를 승리로 이끌어 2400억원이 넘는 막대한 국부의 유출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바 있다.

총 20여명으로 구성된 법무법인 율촌의 국제중재팀은 한국중재학회 부회장과 대한중재인협회 부회장 등을 지낸 백윤재 변호사가 이끈다. 지난 2020년 중국투자자가 우리은행의 위법 담보 등을 문제삼아 제기한 ISD 사건을 대리하고 있다. 그 외 보험사를 대리한 일본의 터빈제작사와의 보험 분쟁도 대리했다.

법무법인 화우는 한국 정부가 피소당한 ISD 사건의 첫 승소를 이끌었다. 화우 국제중재팀은 KCAB 국제중재인으로 국제분쟁 해결의 전문가인 화우의 이준상 변호사(경영전담변호사)와 대한상사중재원과 홍콩국제중재센터 중재인이자 국제중재실무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된 김명안 외국변호사가 공동팀장을 맡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국제중재 그룹은 지난 20여년간 건설, 에너지, 제약 등 산업 전 분야에서 국제중재 사건을 대리했다. 결론만 남은 론스타 사건에서 태평양은 우리 정부 측을 대리하고 있다. 약 25명 규모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