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는 각종 미담과 수년간 가격 동결 등의 이유로 젊은 소비자들로부터 ‘갓뚜기’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착한 기업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러나 올초 오뚜기의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했다. 오뚜기에 미역을 납품하는 업체인 보양이 납품 과정에서 중국산 미역을 혼입해 원산지를 속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보양은 전남 고흥에서 재배한 미역을 가공해 오뚜기에 납품하고, 오뚜기는 해당 미역 제품을 국내산 100%라며 ‘옛날 미역’ 상표로 판매해왔다.
중국산 미역 혼입 의혹은 2019년 9월 여수해양경찰서로 접수된 경쟁업체 제보로부터 시작됐다. 보양은 중국산 미역을 섞어 팔았다는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와 염화칼슘으로 미역을 세척하면서 성분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제기한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았다.
오뚜기와 보양은 약 2년간의 수사 끝에 모든 논란에서 벗어나게 됐다. 지난 9월 경찰과 검찰 조사 단계를 거친 오뚜기와 보양은 중국산 미역을 썼다는 오명을 벗게 됐다. 법무법인 바른의 ‘발로 뛰는’ 변호로 정식재판까지 가지 않고 혐의없음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 경찰 이어 검찰 수사에서도 ‘무혐의’ 이끌어낸 바른
보양은 어민들이 재배한 국내산 미역을 사들여 김으로 쪄서 익히는 자숙 과정과 소금에 절이는 염장 과정을 거쳐 중국으로 보낸다.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미역의 줄기와 잎을 분리하는 임가공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임가공 작업을 하는 이유는 미역은 큰 줄기와 잎으로 이뤄져있는데, 질긴 줄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먹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이 작업을 우리나라에서 해왔지만, 지방에서 일손을 구하기 어렵고 노령화되면서 중국에 맡긴 것이다. 오뚜기 ‘옛날 미역’은 이 같은 작업을 거친 미역 잎들을 말린 제품이다.
문제는 임가공 작업 과정에서 중국산 미역이 섞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부터다. 경찰은 보양이 중국에서 임가공한 국내산 미역 잎에 중국산 미역 잎을 혼합해 1마대에 각 35kg씩 담아 수입했고, 수입 신고서에는 1마대 당 30kg으로 축소 신고하는 방법으로 중국산 미역 잎을 신고 없이 수입했다고 봤다. 또 보양이 판매한 미역에 국내산 미역과 달리 흰털이 발견됐다는 점도 중국산 미역을 혼입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중국산 미역을 섞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결백을 밝히기는 변호인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른의 박성근 변호사는 20년 넘게 검사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경찰의 증거들을 역추적하면서 보양의 결백을 증명해냈다.
박 변호사는 “임가공을 마친 미역 잎을 들여오면서 5kg의 무게를 줄인 것은 보관과 통관 과정에서 수분이 빠지는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중국산 미역 혼입과는 무관하다”면서 “탈수율을 고려해 무게를 줄여 수입 신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흰털이 발견된 보양의 미역과 국내에서 가공, 판매하는 타 업체 미역 사이에 DNA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고, 중국산 미역과 국내산 미역을 구별할 과학적 방법도 없음을 증명해냈다.
2019년 내사가 시작된 이후 2020년 6월부터 보양 임직원들이 소환조사가 시작됐고, 지난 6월 순천지청의 보양 사무실과 임직원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진행됐음에도 중국산 미역을 반입했다는 증거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중국산 미역을 사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보양의 모든 계좌를 제공했다”면서 “중국산 미역의 구입처, 가격, 구입 자금 등에 대한 어떤 증거도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 중국 공장 책임자 인터뷰… 발로 뛴 증거자료로 검증해
박 변호사는 보양에 씌워진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중국 연운항 강소성시에 있는 임가공 공장 책임자 전체를 인터뷰했다. 이 과정에서 미역 임가공 시스템상 중국산 미역 혼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중국으로 운송된 미역은 중국 세관의 관리하에 밀봉된 컨테이너로 작업장으로 보내지고, 작업 완료 직후 냉동 창고에 잠깐 보관된 뒤 다시 밀봉된 컨테이너에 실어 항구에 선적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중국 공장 직원들과 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공장에서는 임가공 작업만 이뤄질 뿐이라고 강조했다”면서 “게다가 강소성에서는 미역 생산이 되지 않아 중국산 미역을 섞으려면 몇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미역을 사와야 하는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보양이 염화칼슘으로 미역을 세척했는데도, 염화칼슘 성분을 표시하지 않았다며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보양은 중국에서 임가공해온 미역 잎을 세척하고, 건조해 오뚜기에 납품했다. 세척 공장이 바닷가와 가까울 경우 바닷물로 1차 세척을 하고, 민물로 2차 세척을 하지만 보양의 경우 공장 위치가 바다와 멀었다. 보양은 1차로 지하수에 식용 염화칼슘을 풀어 바닷물과 비슷한 농도를 만들어 세척한 뒤 2차로 민물로 미역을 씻었다.
그러나 검찰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은 혐의가 없다고 봤다. 수산물 세척 과정에서 사용한 염화칼슘은 성분과 함량을 표시해야 할 ‘식품 첨가물’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식품표시 광고법에 따르면 가공식품이 아닌 수산물의 경우 성분과 원재료를 표시할 필요가 없었다. 보양이 오뚜기에 납품하는 건미역은 수산물에 해당한다.
박 변호사는 식용 염화칼슘 사용이 문제가 없다는 점을 밝혀내기 위해 경쟁업체 미역 제품에 대한 성분 비교분석 실험을 진행했다. 염화칼슘은 미역에 염소와 칼슘 성분으로 분해돼 남아있었고, 바닷물로 세척한 미역과 성분 함량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 결과에서도 관련 법령과 위생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뚜기 ‘옛날 미역’에 대한 모든 논란은 해소됐지만, 오뚜기와 보양 측에는 여전히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중국산 미역 논란이 커지면서 당시 오뚜기 이강훈 대표는 회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면서 전액 환불, 회수 조치를 공지했다. 보양도 모든 납품 업체와 거래가 끊기면서 직원 50% 이상을 휴직 처리하고, 대출로 버텨왔다.
박 변호사는 보양과 오뚜기측 피해도 상당했지만, 어민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제대로 된 수사였다면 중국산 미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적발했다는 점에서 어민들이 득을 보는 수사였다”면서 “그러나 ‘모래 위 지어진 성’인 부실한 혐의들을 기반으로 수사를 장기간 이어갔다는 점에서 오히려 어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 역설적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