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25일 오전 발생한 유·무선 네트워크 장애(인터넷 먹통)의 원인이 ‘경로 설정(라우터) 오류’ 때문이라는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자영업자와 배달 업종 종사자 등 피해를 본 일부 시민들이 집단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손해 배상의 기준이 ‘KT 약관’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손해액이 제한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에는 KT 통신장애와 관련해 “KT 때문에 사무실도 올스톱, 포스기도 정지, 난리가 났다”며 “너무나 바쁜 월요일 오전에 이게 무슨 일인가”라며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에 한 변호사는 “업체 측의 과실이나 고의 또는 충분히 필요한 상황을 하지 않아 사건이 생긴 경우라고 한다면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제기는 가능해 보인다”고 답글을 달았다.
◇KT는 기간통신사업자...”약관 따라 손해배상”
하지만 실제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배상을 받는다고 해도 사실상 “손해배상액이 예정돼 있는 사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테크앤로 부문장(대한변협 공인 IT 전문 변호사)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KT는 기간통신사업자로 이용 약관이 있다”면서 “즉 과기정통부가 인가한 약관에 따라 QS(서비스 품질) 보증을 하게 돼 있다. 즉 일정 시간 이상의 사고가 났을 경우 무조건 보상을 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즉 손해액이 약관상 ‘네트워크 장애에 따른 보상’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KT 이용약관 52조에 따르면 ‘손해배상금액은 서비스 별 약관에서 별도 정한 경우 이외에는 계약자가 청구 받은 최근 3월분 요금의 일평균액에 이용하지 못한 날짜수를 곱해 산출한 금액의 3배를 기준으로 계약자와 협의해 배상한다’고 명시돼 있다.
구 변호사는 “(피해 시간을) 2시간으로 잡아도 (손배액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통신서비스를 이용했을때 손해를 계산하는 방법이 약관에 나와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약관은 이용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하지 않으면 유효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약관 내용의 효력을 놓고 향후 법정에서 다툴 여지도 낮게 봤다.
구 변호사는 “약관은 이용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하지 않으면 유효하다. 부당하게 불리하면 약관규제법에 따라 무효가 인정된다”면서 “통신사업자에게 너무 지나친 손해액을 묻게 되면 소위 망할 수 있고 망할 경우 그 피해가 이용자들에게 돌아 온다”면서 “기간통신사업은 소셜 인프라 사업이라는 점에서 적절하게 조정된 약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또 “KT는 시내전화만 정부 인가 대상이라서 이동전화 약관이 부당하게 불리한 내용인지 다툴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이를 두고 다퉈서 손해배상을 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KT가 보상에 나섰던 2018년 아현지사 화재로 인한 통신장애 사건과는 결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당시엔 외부인이 불을 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에서 KT가 결국 보상에 나섰지만, 이번 사건은 ‘자체 결함’이라는 점에서 약관에 따라 배상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더 큰 보상 가능? ‘특별 손해’ 입증 쉽지 않아
이처럼 ‘계약 불이행’에 따른 통상적 손해는 약관 내 배상 규정으로 보상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더 큰 손해를 본 자영업자들이 집단소송을 청구할 경우 민법상 ‘특별 손해’를 입증하느냐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준성 법무법인 민후 IT전문 변호사는 “’특별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손해라는 것인데 KT가 그런 특별한 사정을 알 수 있었을 경우에만 배상해야 한다는게 민법상 기본 판단이다. 이 부분이 쟁점이 될텐데 사실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별 손해에 대한 입증은 주장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만약 통신장애로 중요한 계약을 놓친 피해자가 있을 경우, 통신장애로 인해 이러한 피해를 KT가 알거나 미리 알 수 있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제선 법무법인 창천 변호사도 “집단소송으로 갈 경우 손해 추정과 인과 관계 여부, 과실 추정에 대한 입증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법무부가 강행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집단소송제 도입) 움직임과 연동해 이번 사고를 계기로 관련 이슈가 더욱 힘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물건 주문을 제때 못한 소상공인들이나 전화로 연락을 받지 못해 직접적 손해를 본 배달 및 택배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경제 관련 시민단체 등에서 집단소송 참가자를 모집해 이슈를 키워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