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디지털 혁신을 위해 여러 정책을 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체감이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포지티브 규제가 대표적입니다. 몇 년 전부터 포지티브 규제를 없앤다고 했지만 여전히 많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엘리트 법조인의 스타트업행(行)이 화제였다. 이정명 변호사(사법연수원 34기)도 그 중 하나였다. 이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법무법인 충정에 몸담고 있다가 2010년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에 합류했고, 2020년 5월까지 씨티그룹 법무팀에서 다양한 일을 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국내 1위 핀테크 업체인 토스의 법무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굴지의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한국의 핀테크 회사로 자리를 옮긴 이유를 묻자 이 변호사는 “금융과 기술이 만나는 핀테크 현장에서 일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는 토스에서 근무하면서 변호사로서 자신의 지평선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금융상품을 주로 다루다가 토스에서는 다양한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디지털금융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설명이었다. 이 변호사는 씨티그룹에서 근무하던 2019년 하버드대 온라인 핀테크 코스를 수료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가 법무팀장으로 있던 시기에 토스는 토스뱅크, 토스증권 등 신규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했다. 처음 이 변호사가 법무팀장으로 입사했을 때 토스 법무팀은 4명 정도였지만, 이 변호사가 퇴사할 때는 법무팀만 15명으로 3배 정도 커졌다.
이 변호사는 “다른 금융회사와 달리 핀테크에는 금융권 뿐만 아니라 IT, 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일하다보니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올해초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법무법인 광장이 신설한 디지털 금융팀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광장은 금융 규제와 IT 보안, 개인정보보호 등 디지털금융 전반에 대한 법률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금융팀을 신설했다. 신사업, 인공지능 및 개인정보보호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고환경 변호사(연수원 31기)와 암호화폐, 금융규제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강현구 변호사(연수원 31기)가 광장 디지털금융팀을 맡고 있다. 여기에 금융감독원 출신의 전문가들이 변호사를 도와주고 있다. 핀테크 현장을 경험한 이 변호사가 합류하면서 대형로펌 디지털금융팀 중에서도 광장의 라인업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변호사는 “금융규제 전문가와 IT·데이터 전문 변호사가 함께 팀을 이룬 인적구성이 매력적이었다”며 “통찰력 있는 법률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합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국내 핀테크 업계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토스나 카카오페이처럼 급성장하는 핀테크 회사가 나오는가 하면 P2P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잊을만 하면 한번씩 대형 금융사고도 터지고 있다. 이 변호사는 정부가 핀테크와 관련된 규제를 하루빨리 가시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가 명확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핀테크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규제와 관련해서는 개선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이 변호사는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고 했다. 포지티브 규제는 법률로 허용하는 것을 일일이 나열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방식의 규제다. 허용하는 것 외에는 모두 금지하기 때문에 규제 강도가 세다. 반면 네거티브 규제는 금지하는 것만 법률에 나열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해주는 규제 방식이다.
이 변호사는 “정부가 몇 년 전부터 포지티브 규제를 풀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며 전자금융거래법을 언급했다. 그는 “디지털금융 규제는 사후관리감독 체제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이 변호사는 핀테크 발전을 위해서는 디지털금융을 위한 정부 차원의 인력 육성과 스타트업 자금 조달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핀테크에서는 모두가 개척자”라며 “고객들에게 단순히 법률만 알려주는 변호사가 아니라 동반자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