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4일 경기 안산시 시화멀티테크노밸리(MTV) 내 티플랙스(081150) 공장. 천장에 달린 22대의 크레인이 연신 스테인리스 철강 제품을 옮겼다. 티플랙스는 증권가에선 과거 희귀금속 사업을 하던 티플랙스엠텍(현재 흡수합병) 때문에 ‘희토류 테마주’로 묶이곤 하지만, 스테인리스 철강 제품을 가공·유통하는 일이 핵심 사업이다.
티플랙스 공장은 크게 4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티플랙스의 주력 제품인 스테인리스 봉강(봉 형태의 철강)을 가공하는 곳은 C·D동 전면부다. 말려있는 스테인리스 봉강 제품을 곧게 편 뒤 절단하는 공정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티플랙스는 국내산 스테인리스 봉강 제품시장에서 점유율 30%를 차지하고 있다. 수입산을 포함해도 점유율이 20%대라고 한다.
C·D동 뒤편에선 스테인리스 선재(가늘게 늘인 철강)를 가공하는 CDM 설비가 움직이고 있었다. 선재를 강하게 당기는 과정에서 강도도 더해져 마봉강(CD-Bar)으로 재탄생한다.
내구성과 내식성이 좋은 스테인리스 마봉강 특성상 반도체 산업의 관이음새(피팅·Fitting)부터 액화천연가스(LNG) 밸브, 원자력발전 설비까지 다양한 분야의 원재료로 쓰인다. 수익성 측면에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영국 티플랙스 회장은 “국내 최고 품질의 제품이라고 자부한다”며 “대만과 일본으로도 수출하고 있다”고 했다.
A구역과 B구역에선 포스코에서 들여온 열연·냉연코일을 가공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티플랙스는 2021년부터 포스코의 스테인리스 협력가공센터로 지정됐다. 고객사 주문에 맞춰 길이와 폭을 자르는 장치인 시어(Shear)와 슬리터(Slitter)를 지나, 옆면을 다듬는 트림(Trim)까지 이어졌다. 티플랙스는 월평균 2000톤(t)가량을 가공·유통 중이다.
티플랙스는 스테인리스 판재 분야에선 후발주자이지만,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 스테인리스 판재 시장 규모가 스테인리스 봉·형강, 선재 등보다 15배가량 크기 때문이다.
티플랙스는 1981년 서울 영등포 문래동에서 문을 연 철공소 태창상회가 뿌리다. 김영국 회장이 스테인리스 철강 제품 전문 기업으로 일궜다. 현재 공장은 2013년 문을 열었다. 1800개 고객사의 신뢰를 얻은 덕분에 30년이 넘게 흑자 경영을 이어왔다. 2022년 역대 최대 실적인 매출 2577억원, 영업이익 213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티플랙스도 부침을 겪었다. 2023년 매출 2511억원, 영업손실 15억원을 냈다. 1991년 법인 전환 이래 첫 연간 적자였다. 코로나19 시기에 호황을 맞았던 가전과 반도체 등 전방산업 업황이 꺾인 여파가 컸다. 스테인리스 제품 판매 가격도 2022년 1㎏당 5631원에서 2023년 5025원으로 하락했다. 티플랙스 주가도 2022년 3월 장 중 7950원까지 치솟았다가 3000원대로 뒷걸음질 쳤다.
티플랙스는 수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췄고, 지난해 매출 2075억원과 영업이익 48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티플랙스는 올해도 수익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 결산을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올해 1분기까지는 지난해 수준의 실적을 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국내 경기가 좋지 않을뿐더러, 고객사 중 일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여파로 주문을 망설이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한다.
티플랙스는 미래 성장 전략도 준비 중이다. 티플랙스 안산 MTV 본사의 전체 부지는 약 1만7000평이다. 현재 공장은 5800평 규모고 주차장과 도로, 사무동 등을 제외하고 남은 부지가 약 8000평이다. 티플랙스는 여기에 2000평 크기의 제2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기존 공장 안에서 재고를 관리하고 유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티플랙스는 제2공장을 2026년 착공하는 것이 목표다. 이후 제2공장으로 스테인리스 봉강·CDM 설비를 옮기고 증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00억원가량을 투자해야 하는데 비용은 회사 재원을 활용하기로 했다. 티플랙스의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는 111억원이다.
티플랙스는 제2공장을 통해 사업 기반을 확장, 2027년까지 매출 2500억원 수준을 회복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잡았다. 창사 50주년인 2031년에 스테인리스 제품 가공·유통 사업을 넘어 첨단 소재 사업까지 아우르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