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호 관세 정책으로 전 세계로부터 욕을 먹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모두가 칭찬할 만한 행정명령이 있습니다. 트럼프를 싫어하기로 유명했던 미국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도 칭찬할 것 같은 서명입니다. 바로 지난달 31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싱어송라이터 키드 락과 함께 서명한 ‘암표 근절을 위한 행정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스콧 베센트 미 재무부 장관과 팸 본디 법무부 장관에게 국세청(IRS) 등을 통해 암표상을 막도록 한 것입니다. 법무부(DOJ)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티켓 봇(티켓 대량 구매 프로그램)’ 사용을 단속하고, 티켓마스터 같은 판매회사의 규제 감독을 강화합니다. 티켓 판매 시, 수수료를 포함해 전체 가격도 공개하도록 ‘가격 투명성’도 강화했습니다. 이제 미국에서 암표 거래를 하거나 방관한다면, 미국에서 가장 무섭기로 유명한 국세청(을 가진 재무부)과 법무부를 상대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암표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된 것은 2023년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입니다. 이 투어는 5개 대륙에서 149회 공연을 펼친 역대 최고의 투어로,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고 해서 월스트리트저널은 ‘테일러 노믹스’라는 단어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 것이 암표. 499달러(약 71만원)짜리 티켓값이 3만5438달러(약 5055만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스위프트는 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영국 더타임스가 “트럼프의 암표 근절 행정 명령으로 테일러와 트럼프가 예상치 못한 동맹을 맺다”고 보도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들은 이런 테일러 노믹스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내한은 2011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입니다. 2023년 에라스 투어 당시에는 일본 도쿄와 싱가포르에서만 공연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마흔아홉 번째 이야기입니다.
<1>5만명 이상 공연장이 없다
그 이유는 최근 내한하는 대형 스타들의 공연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대형스타들의 내한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오는 16~25일에는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가, 다음 달 31일에는 힙합의 전설 카니예 웨스트(칸예)가 첫 단독 콘서트를 가집니다. 오는 10월에는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와 미국 힙합 슈퍼스타 트래비스 스캇의 공연이 준비돼 있습니다.
그런데 오아시스와 콜드플레이와 트래비스 스캇은 고양종합운동장, 칸예는 인천문학경기장에서 공연을 가집니다. 두 곳 다 너무 훌륭한 공연장이지만 고양종합운동장의 수용인원은 4만3000명, 그러나 콘서트를 위해 무대 장치 등을 설치할 경우 3만명 수준으로 내려갑니다. 인천문학경기장 역시 4만9000석 정도의 좌석은 보유하고 있지만, 공연을 할 때는 3만명 수준으로 내려갑니다.
테일러 ‘코리아 패싱’의 첫 번째 문제는 대규모 공연장이 한국에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테일러가 공연할 때 요구하는 첫 번째 조건은 5만명이 넘는 공연장입니다.
서울에서 그나마 수용인원이 많은 곳은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잠실올림픽주경기장입니다. 그러나 잠실주경기장은 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으로 2026년 말까지 대관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축구 경기장으로 공연 대관 심사가 까다로운 편입니다. 그 심사를 통과한다고 해도 축구팬들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2>공연에 대한 호감도도 낮아
테일러가 공연장을 선택할 때 주의 깊게 보는 공연에 대한 호감도도 한국은 낮은 편입니다.
최근 가수들에게는 특이한 문화가 생겼습니다. 콘서트를 하기 전에 주민들에게 선물을 돌리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가수 아이유가, 올해는 지드래곤이 공연을 앞두고 인근 주민들에게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선물했습니다.
이런 배려는 당연히 칭찬 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공연업계에서는 가수들이 이렇게까지 하게 된 배경이 안타깝다고 합니다. 공연을 할 때마다 각종 민원이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한 공연 관계자는 “평일 밤 각종 소음에도 쿨한 사람들이 주말 공연에만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며 “공연 준비와 세팅, 협조 등은 오히려 해외 공연을 할 때가 더 편하다”고 했습니다.
테일러가 공연을 할 때는 약 50명의 트럭 운전사가 무대 장비와 구조물을 운송합니다. 조명·음향·무대 설치 등 수백 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공연마다 함께 이동합니다. 대형 공연에서는 이들이 준비할 공간까지 보장돼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모두 난이도가 높은 일들입니다.
<3>만약 부산에 부산돔이 생긴다면?
국내 대형 공연장의 부재 문제는 내한하는 해외 가수들의 문제 만은 아닙니다.
최근 K팝의 성장으로 해외 스타디움 투어를 하는 가수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투어할 때마다 인근 국가에서는 팬들이 모여들고, 그 지역 경제가 살아납니다. 그러나 정작 K팝을 만든 한국에서는 이런 효과를 볼 수 있는 공연장이 없습니다. K팝 대형 가수들이 해외 공연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에 한국팬들이 섭섭한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공연장도 없는데, 공연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받는다”며 억울해 합니다. 잘 키워놓은 K팝이라는 상품에 대한 수익을 해외 도시들이 받아먹는 셈입니다.
그래서 나온 농담이 있습니다. 부산이 도시 활성화를 위해 엑스포나 글로벌 금융도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도쿄돔 같은 부산돔을 지으면 어떨까’라는 것입니다.
엑스포의 경제적 효과는 최근 오사카 엑스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크지 않아 보입니다. 글로벌 금융도시는 서울 여의도도 못하고 있는 것을 부산이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산의 야구 사랑이라면, 규모가 큰 ‘부산돔’의 관중은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번 방탄소년단의 부산 콘서트를 본다면 K팝 아이돌 가수로도 5만명 이상을 채우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보통 해외 팝스타들은 일본은 기본으로 가기 때문에, 인근 부산으로 불러들이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부산에는 호텔 등 이들을 수용할 부대시설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해관계들로 탄생할 뻔했던 K팝 전문 공연장 ‘CJ라이브시티 아레나’가 무너진 것을 보면 꿈 같은 일 같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