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강행하면서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증권가에선 국내 증시 바닥에 대한 기술적 계산이 먹히지 않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당분간은 멘트 하나하나에 흔들릴 수밖에 없단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발표로 전 세계 증시가 급락하고 있다. 미국에선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관세 발표 직후 이틀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0.5%, 나스닥지수는 11.4% 폭락했다. 증시 하락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S&P500 선물과 나스닥지수 선물은 오후 3시 현재 3.6, 4.6% 하락 중이다.
이날 같은 시각 현재, 코스피 지수는 5% 넘게 급락해 2340선을 밑돌고 있다. 지난주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로 1430원까지 내려갔던 원·달러 환율도 이날 30원 넘게 오르며 장중 1470원을 넘어섰다. 상호 관세와 미국 증시 급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 물량이 시장에 쏟아진 결과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오전 코스피 선물 지수가 급락하자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해 매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매도 사이드카는 선물 시장에서 선물 가격이 5% 이상 하락해 1분간 지속되는 경우 발동한다.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것은 글로벌 증시가 급락한 지난해 8월 5일 블랙 먼데이 이후 8개월 만이다.
증권가에선 기술적 저점 계산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체념 섞인 분석이 나온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이날 “시장이 이성적이라고 보기 힘든 상황으로 밸류에이션 저점 등의 논리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며 “문제가 단기간에 깔끔하게 해결될 수 없기에 추가적 노이즈(소음)가 발생하면 낙폭이 더 나올 수 있는 상황이고 반등해도 그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추가 낙폭이 발생하면 평가손실이 더 나올 수 있겠지만, 천천히 분할 매수를 실행하는 것이 손익비가 높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이 과정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레버리지(차입 등) 사용은 금물이다”라고 말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4월 2일부터 본격화한 트럼프의 상호 관세 리스크가 모든 것을 삼켜버리면서 잇따른 증시 급락을 초래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국내 증시도 이날부터는 미국발 폭락 여파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행 주가순자산비율(PBR) 0.83배에서 하방 경직성을 구축해 왔던 국내 증시지만, 추가적인 주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단 의미다.
3월 비농업고용 호조세 등 기술적 지표가 개선됐음에도 관세 충격 아래 증시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단 게 한 연구원 설명이다. 그는 “미국 증시는 3월 비농업고용 호조에도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대한) 중국의 맞대응 보복 관세,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 등이 대규모 투매를 유발하면서 역대급 폭락세를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대표 투자심리 지수인 공포와 탐욕 지수(Fear & Greed Index)가 극도의 공포(Extreme Fear) 구간인 4pt로, 2020년 3월 팬데믹(2pt까지 하락)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 연구원은 “탄핵 선고 이후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완화됐음에도 미국 증시의 연이은 폭락 여파와 관세 뉴스 플로우,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4월 기대 인플레이션, 그리고 삼성전자의 잠정실적 발표 등이 남아있어 앞으로 변동성이 큰 폭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관세 부과국들의 보복 관세는 시장 변동성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복 조치에 대해 추가 관세를 예고한 만큼,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관세 부과국들은 자국 기업과 연계해 협상에 신중히 나설 가능성이 높으며, 대응 역시 강경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 증시의 하락세를 감안할 때, 시간이 지날수록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준의 금리 결정 또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연준이 시장이 원하는 만큼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단 것이다. 금리 인하 기대와 관련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고 데이터를 확인하고 움직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