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가 재개된 첫날 희비가 엇갈린 두 종목이 있다. 한미반도체(042700)한화비전(489790)이다. 두 회사는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용 제조용 반도체 장비 공급을 두고 최근 경쟁이 붙었다. 한화비전 산하 한화세미텍이 사실상 SK하이닉스에 납품을 공식화했다는 분석이 나오며 한미반도체의 주가가 흔들린 것이다. 게다가 한미반도체의 경우 최근 대차잔고가 크게 늘어나며 공매도 타깃이 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는데 이 또한 사실로 드러났다.

한미반도체 TC본더 '1.0 TIGER'. /한미반도체 제공

1일 오후 2시 29분 기준 유가증권시장에서 한미반도체 주식은 전 거래일 대비 2.93%(1900원) 오른 7만100원에 거래 중이다. 한화비전 주식은 전 거래일 대비 0.71%(400원) 내린 5만64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날은 한미반도체가 오르고 한화비전이 내리고 있지만 전날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전날 주식시장은 공매도가 약 5년 만에 전면 재개되며 코스피·코스닥지수가 급락한 가운데, 오름세를 보인 몇몇 종목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한화비전이었다. 한화비전은 전 거래일인 지난달 31일, 종가 기준 전 거래일 대비 1.61% 오른 5만67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반면 한미반도체는 전 거래일 대비 10.85% 떨어지며 6만82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장중 52주 최저가를 다시 썼다. 한미반도체 주식이 6만원대로 떨어진 것은 약 14개월 만이다.

한미반도체는 앞서 대차거래 잔고 수량이 늘어나며 공매도 타겟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는데 이 또한 현실로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기준 한미반도체는 코스피시장에서 공매도 순위 6위에 올랐다. 공매도 거래대금은 873억1489만3350원으로, 총 거래대금에서 공매도 비중은 43.1%에 달했다. 공매도 재개 첫날 거래 상위 50종목 중 1위였다.

반면 한화비전의 공매도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한화비전의 공매도 거래량은 19만주, 거래대금은 107억4300만원이다. 공매도 비율은 13.22%로 낮다고 볼 순 없지만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이는 최근 한화비전의 자회사가 한미반도체의 독점적 지위를 흔든 영향으로 보인다. TC본더는 인공지능(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핵심 장비다. 그동안 SK하이닉스에서는 한미반도체 장비를 주로 사용해 왔지만, 최근에는 한화비전의 자회사 한화세미텍과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이에 한미반도체의 독점적인 지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시장에서 제기됐다.

한화비전은 최근 SK하이닉스와 HBM TC본더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두 차례 공시했다. 이 공급 계약 금액을 다 합하면 공급 누적 계약금액은 420억원가량이다. 사실상 납품을 공식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동안 SK하이닉스에 거의 독점적 위치에서 TC본더를 공급해오던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는 위협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 한미반도체는 1분기 해외고객사 비중이 90%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는데 이를 두고 시장 일각에선 한화세미텍의 영향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향후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는 마이크론이나 중국 등 고객사 확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날 공매도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것에 대해 “한미반도체 TC본더 사업부가 6조~7조원의 밸류에이션(Valuation·기업 평가 가치)을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한화비전의 경우 현재 회사 가치에 반도체 사업부 밸류에이션이 거의 반영이 안 돼 있는 수준”이라며 “주가가 고평가됐다고 볼만한 요소가 없어 주가가 빠질 이유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SK하이닉스에서 TC본더 발주 공시가 한화비전만 나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발주 나오는 것은 한화비전 쪽에 집중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