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리테일 영역에서 전통의 강호와 후발주자 간 경쟁이 점점 과열 조짐을 보이자 금융당국이 모니터링에 나섰다. 고객 유치를 위한 각종 혜택 강화가 투자자에겐 좋은 일이지만, 경쟁이 과도해지면 불필요한 기싸움과 무리수 남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당국은 메리츠증권의 유관기관 수수료 무료 이벤트를 과열 경쟁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조선비즈에 “주식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시장을 둘러싼 증권사 간 경쟁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자산운용사의 상장지수펀드(ETF) 싸움에 비하면 (증권사들은) 우려할 단계는 아닌 걸로 보인다”면서도 “그래도 경쟁 강도가 점점 세지는 분위기인 만큼 계속 관찰하겠다”고 덧붙였다.

증권사 간 리테일 경쟁에 불을 붙인 건 지난해 국내 증시를 강타한 해외주식 투자 열풍이었다. 미국 주식을 향한 개인 투자자의 투자 이민이 본격화하면서 증권사의 외화증권 수탁 수수료 수익도 급증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개인 투자자가 거래한 미국 주식 금액은 5099억달러(약 747조원)다. 2023년보다 87% 급증한 규모다.

이렇다 보니 미래에셋·삼성·키움증권 등 리테일 분야 전통 강호뿐 아니라 토스증권·메리츠증권 등의 후발주자도 서학개미 모시기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직관적인 사용자환경(UI)을 앞세운 토스증권이 새내기 투자자를 대거 유치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토스증권 제공

후발주자의 고속 성장은 기존 강자 중에서도 특히 키움증권(039490)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키움증권은 전체 매출에서 리테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증권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키움증권의 지난해 외화증권 수탁 수수료 수익은 전년 대비 95.6% 증가한 2089억원이다. 토스증권 수익은 2080억원으로 키움증권 턱밑까지 쫓아왔다. 전년 대비 증가율만 보면 211.8%로 키움증권을 한참 앞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메리츠증권마저 작년 11월 18일 거래·환전 수수료 완전 무료 이벤트 카드를 꺼냈다. 이 이벤트는 메리츠증권 계좌를 보유한 투자자에게 국내·미국 주식 거래 수수료와 달러 환전 수수료 면제 혜택을 주는 행사다. 거래·환전 수수료뿐 아니라 한국거래소·예탁결제원 등에 내야 하는 유관기관 수수료도 메리츠증권이 부담한다. 유관기관 수수료까지 증권사가 대신 내주는 건 처음이다.

금융당국은 메리츠증권의 이 파격 이벤트가 증권사 간 혈투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였다고 봤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유관기관 수수료까지 증권사가 내주겠다고 하면 경쟁사로선 가만히 있기 힘들 것”이라며 “대형사들이 자금력을 무기 삼아 이벤트를 남발하면 중소형사가 설 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메리츠증권 제공

쩐의 전쟁은 이미 본격화했고, 잡음도 새어 나오고 있다. 키움증권은 올해 1월 해외주식 체결금액 기준을 충족한 고객을 대상으로 최소 1만원에서 최대 50만원의 현금을 리워드(보상)로 지급하는 새 멤버십을 도입했다. 별다른 조건없이 오로지 해외주식 약정금액만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요건을 대폭 낮춘 것이다. 키움증권은 올해 리워드 비용으로만 2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 멤버십을 도입하자 보상만 노리는 체리피커(얌체 소비자) 유입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자전 거래와 거래량 부풀리기를 방조한다는 비판이 일자 키움증권은 이달 27일 체리피커의 주 타깃으로 거론되는 일부 종목을 실적 인정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했다.

엄주성 키움증권 대표이사. / 키움증권 제공

지난 26일 열린 키움증권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엄주성 키움증권 대표이사가 토스증권의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를 리딩방에 비유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엄 대표 발언을 접한 토스증권은 내부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하다가 그냥 반응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투자회사들의 경쟁 자체는 투자자의 비용 절감에 도움을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당국이) 함부로 개입할 수는 없다”며 “건강하고 정직한 경쟁 환경을 유지하도록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