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의 기준은 국익이라며 정부를 재차 압박하고 나섰다. 요지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넓히는 개정안은 국익에 부합하니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기업 대 반기업’, ‘성장 대 분배’ 등의 갈등 문제로 접근하면 합리적 해법을 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28일 금감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 관련 의견’을 배포했다. 지난 13일 야당이 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하면서 여당을 중심으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의요구권을 건의하겠다는 목소리가 커진 데에 따른 것이다.
금감원은 정부가 상법 개정안을 거부하면 주주 보호 논의가 원점으로 회귀돼 재논의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렵다고 했다. 금감원은 “재계는 자본시장법 대안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며 “국회의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도 큰 진척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선 정부의 주주 가치 제고에 대한 의지에 의문을 품을 것”이라며 “향후 자본시장법 개정 가능성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때의 부작용은 크지 않다고 했다. 상법 개정안이 비상장회사에 적용되긴 하지만, 국내 중소 비상장회사의 지분 구조는 대표 또는 가족 등 극소수의 대주주가 회사 지분 전체를 지배하는 게 일반적이어서다. 이들 기업에서 합병과 분할 등 자본거래가 발생할 여지도 적다는 게 금감원 판단이다.
금감원은 “실질적으로 (비상장회사가 상법 개정안의 영향을 받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그래도 부작용 우려가 있다면) 제도적 보완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금감원은 대안으로 ▲경영 판단의 과도한 형사화 방지(배임죄 요건 강화, 특별 배임죄 폐지 또는 적용 배제) ▲면책 가이드라인 등 안전항으로서의 절차 규정 마련 ▲소송 리스크 보호 장치 정비 등을 제시했다.
금감원은 정부가 재의요구권 행사 여부를 고려할 때 판단 기준을 국익으로 삼고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상법 개정안이 장기적으로 자원의 효율적 배분, 경쟁 촉진, 혁신 촉발 측면에서 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을 해소할 것이라고 봤다. 단기적으로는 일장일단이 있지만 제도적 보완으로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면 된다고 했다.
금감원은 “기업지배구조 선진화 이슈는 경쟁의 룰 왜곡을 바로잡아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 효율적 자원 배분을 도모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자는 시장주의적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질서와의 조화 등 협의와 조정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고 갈등의 문제로 접근하면 합리적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며 “재의요구를 통해 그간의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건 비생산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