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키움증권 정기 주주총회에서 엄주성 키움증권 대표가 “토스증권 커뮤니티는 리딩방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해 여의도가 술렁였다. 주총에 참가한 주주들이 토스증권 등에 점유율을 뺏기는 상황을 우려하면서 ‘우리도 커뮤니티 등을 활성화해 투자자를 끌어모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질의하자, 엄 대표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 발언은 유력 업체 대표가 신생 업체를 직접 ‘저격’했다는 점에서도 화제였지만, 무엇보다 최근 일부 해외 주식 투자자 사이에서 극심해진 뇌동매매(남의 말만 믿고 따라서 주식을 사고파는 것)나 묻지 마 투자 행태를 지적한 것이어서 주목받았다. 한동안 국내 투자자들이 몰렸던 해외 레버리지·인버스형 고위험 ETF(상장지수펀드) 등이 급등락하거나, 시가총액이 미미한 해외 소형주에 한국 개미들이 달려들면서 가격 변동을 키우는 사례까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테슬라 2배’ ETF 시총의 40% 보유

포털 사이트와 각종 주식 거래 플랫폼에 있는 ‘종목 토론방’, ‘게시판’ 등은 뇌동매매 발원이다. 일부가 특정 종목을 거론하며 인기몰이를 하면, 여러 사용자가 여기에 혹해 따라 주식을 사고팔아 해당 종목이 실시간 거래 대금 상위권을 싹쓸이하는 현상이 종종 목격된다. 키움증권 주총에서 언급된 토스증권의 ‘커뮤니티’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주식 토론방 중 하나다. 지난해 11월 한 달간 토스증권을 통해 거래된 해외 주식 규모가 30조원을 넘어설 정도다. 이 증권사를 통해 미국 주식을 한다는 회사원 이모(38)씨는 “밤에 심심할 때 커뮤니티 글만 보고 있어도 ‘꿀잼’”이라면서 “핫한 종목을 따라 샀다가 바로 팔아 쏠쏠하게 용돈을 벌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물려 있는 것도 있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테슬라, 엔비디아 같은 유명 종목은 한국인이 아무리 사모아도 지분율이 시가총액의 2%를 넘지 않는데, 초고위험 상품은 얘기가 다르다. 한국예탁결제원 등에 따르면, 테슬라 2배 레버리지 ETF(TSLL)의 전체 시가총액 대비 한국인 보유 잔액은 40.5%(18일 기준)에 달한다. 나스닥100 지수 하루 움직임의 3배만큼 수익을 추구하는 ETF(TQQQ)는 11.9%, 뉴욕증권거래소 반도체지수 3배 레버리지 ETF(SOXL)는 22.2%를 보유하는 등 ‘K개미’는 초고위험 상품의 큰손이다.

그래픽=백형선

시가총액이 극히 작은 종목들도 종종 한국인의 손을 타면 롤러코스터를 탄다. 홍콩 증시에서 최근 화제가 된 화장품 유통 업체 ‘예스아시아홀딩스’는 작년 5월 주가가 1홍콩달러 수준이었지만 9월 7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3달러대로 떨어졌다. 최근 1년 새 한국 투자자들은 BYD, 샤오미, 알리바바 등 다음으로 이 종목을 많이 샀다. 한 애널리스트는 “우르르 몰려가서 주가를 띄운 뒤 세력들이 먼저 팔고 나오는 국장(한국 시장)의 행태가 그대로 보인다”고 말했다.

◇“‘K개미’ 미국 주식마저 한국화”

K개미들의 극심한 뇌동매매는 미국에서도 화제다. 최근 미국 자산운용사 아카디안의 오언 라몬트 수석 부사장은 ‘오징어 게임 주식시장(The Squid Game stock market)’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이 미국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개미들의 미국 주식 보유액이 작년 기준 전체 미국 시총의 0.2%에 불과하지만, 특정 틈새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서, “미국 주식시장이 한국화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K개미 군단을 흔드는 뇌동매매가 위험 수위에 왔다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미국 기술주에 베팅한 한국 개미들의 근황’이라는 기사에서 “미국 증시가 약해질수록 한국 개미들의 매수세는 더욱 강해졌다”고 했다. 실제 2월 테슬라 주가가 28% 하락한 후 한국인들은 3월 중 8억3600만달러의 테슬라 주식을 더 사들였고, 2배 레버리지 ETF에 5억8600만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 이 매체는 한 투자자의 말을 인용, “코로나 이후 거래를 시작한 상당수 한국 투자자가 미국 주식시장이 어떠한 하락에서도 반등할 것이라 안주하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