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인협회를 중심으로 상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금융감독원이 조목조목 반박에 나섰다. 상법 개정안이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넓히는 안이다. 재계는 이사에 대한 소송이 남발할 것이라며 반대 중이다.
26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 집중’에 출연해 “한덕수-최상목 체제 하에서 조차 주주가치 보호가 성립이 안 되면 제갈공명이 와도 안 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비상계엄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과 언론을 많이 만났고 해외 투자자들은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부총리를 많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 때 동북아금융허브 추진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하기 위해 뛰신 분이 한덕수 당시 경제부총리, 최상목 부총리는 증권제도과장으로 주무과장이었다”고 덧붙였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한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시장을 떠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이 원장은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정부 의지도 의심받을 거고 주식과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금감원은 주주 충실의무와 관련된 잘못된 해외 사례를 바로잡기 위해 ‘주주 가치 보호 관련 주요 입법례 등 참고사항’을 발표했다. 앞서 이 원장이 한경협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은 데에 따른 것이다.
자료에서 금감원은 ‘미국 50개주 중 회사법에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가 언급된 곳은 델라웨어와 캘리포니아 2곳뿐’이라는 재계의 주장이 허술하다고 했다. 금감원은 “델라웨어주 회사법과 판례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 회사법의 모범 기준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해당 주장은 델라웨어주 회사법의 위상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기업공개(IPO) 기업 중 79%, 포춘 500대 기업 중 68.2%,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중 65% 등 200만개 법인이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상태다. 또 델라웨어주 외에 켄터키, 메인, 미네소타 등은 법 규정과 판례를 통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독자적인 주회사법을 운영 중인 캘리포니아와 미시간, 뉴욕 등도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인정된다.
‘델라웨어주 회사법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책임을 강행하는 규정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일각에선 이사의 책임을 주장하는 자가 귀책 사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이사는 주주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걸 명시한 규정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금감원은 “이사의 충실의무와 그 위반에 따른 법적 책임의 대상에 회사와 더불어 주주도 병기하는 건 회사와 주주의 이익 모두가 충실의무의 보호 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실무상 합병 등 자본거래에서 주주가 직접 권리 당사자로서 이사를 상대로 한 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소 제기를 인정해 확고한 판례법을 형성했다”고 부연했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주주 환원 정책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도 보다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한은 실증분석 결과, 기업의 주주 환원 규모와 주주 보호 지표는 양의 관계가 있었으나 반도체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은 그 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반도체 등의 업종은 투자가 주주 환원보다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내용일 뿐”이라며 “주주 보호 수준이 높을수록 기업가치를 저해한다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