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방산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하 한화에어로)가 3조6000억원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인 21일, 한화에어로는 물론이고 ㈜한화 등 한화그룹 주가가 동반 급락했다.
한화에어로는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으로 국내외 생산 능력을 늘리고 해외 관련 기업을 사들이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최근 유럽의 재무장 움직임 속에서 글로벌 방산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지금이 적기라고 봤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러나 주가 급락으로 한화에어로 주주들은 울상이다. 차입, 회사채 발행, 내부 유보금 활용 등 다른 자금 조달 방법을 놔두고 굳이 발행 주식 수를 늘리는 방식을 택해야만 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 투자자들은 불과 한 달여 전 회사가 1조3000억원을 들여 계열사 주식을 사들인 일을 주목한다. 여유 자금은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계열사 주식을 사는 데 쓰고, 신규 투자금은 개미들에게 손 벌리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의 스타’ 종목, 기습 유상증자에 시장 ‘출렁’
이날 한화에어로 주가는 전날보다 13.02% 떨어진 62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15.8%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한화(-12.53%), 한화시스템(-6.19%), 한화솔루션(-5.78%), 한화오션(-2.27%) 등 한화그룹주가 일제히 내렸다.
한화에어로는 올해 국내 증시에서 단연 돋보이는 ‘스타’ 종목이었다. 작년 말 32만6500원에 거래를 마친 이 종목은 이달 18일 76만4000원을 찍어 두 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시가총액 순위도 작년 말 28위에서 8위까지 단숨에 뛰었다. 주주들은 “자고 나면 오른다”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놓고 대서양 동맹이 분열하자 유럽이 일제히 군비 증강에 나선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이번 유상증자에 대해 회사 측은 “지속적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는 “시장 확대를 위해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타당한 판단”이라면서도 “유상증자 외에 방법이 없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와 내년 연결 영업이익이 6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기대되고, 이후로도 꾸준히 돈이 들어오리라 기대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발표 후 사흘째가 바닥이었다’… 유증의 경제학
회사 처지에 유상증자는 이자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입이나 회사채 발행보다 매력적이다. 또 부채 대신 자본이 늘어나기 때문에 부채 비율이 낮아져 재무 구조 개선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반면 주주에게는 악재로 통한다. 자본금이 늘어난다고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등 기업 실적이 곧바로 좋아지는 것은 아닌데, 당장 주식 수가 늘어 주당순이익(EPS)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 유상증자 물량은 595만500주로 기존 주식의 13.05% 규모다.
삼성증권이 2012~2021년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중 유상증자를 단행한 회사 2211곳의 주가 흐름을 전수조사해 보니, 이번처럼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발표한 주식은 주가가 이튿날 평균 10.2% 급락했다. 유상증자 공시 시점에 가장 크게 하락한 뒤 3거래일째에 저점을 기록했다가, 이후 매우 느린 속도로 회복되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 14일 2조원 유상증자를 발표한 삼성SDI도 당일 주가가 6.18% 급락해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등 투자 심리가 급격히 냉각됐다. 사흘째부터 회복세지만, 주가가 아직 공시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친다.
◇돈 잘 버는 회사가 굳이 왜?
한화에어로는 지난달 10일 1조3000억원을 들여 자회사 한화오션의 지분 7.3%를 사들였다.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에너지 등 다른 계열사가 보유하던 지분을 사주는 데 회사 여유 자금을 쓴 것이다. 증권가에선 “전체 주주보다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 고려한 결정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화에어로 측은 “한 달 전 한화오션 지분 인수와 이번 유상증자 건은 완전히 별개 사안”이라면서 “지분 인수 후 한화에어로 주가가 40만원대에서 70만원대로 올라 주주 가치도 상승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