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 업체 코미코(183300)의 ‘알짜 자회사’ 미코세라믹스가 모(母)회사 주가를 짓누르고 있다. 5년 전 미코에서 물적분할해 설립된 후 코미코의 자회사가 된 미코세라믹스가 상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과거 LG화학이 핵심이던 배터리 사업부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해 곧바로 상장시킨 사례를 떠올린다.
주주들이 아우성을 치자 미코세라믹스는 “당장 상장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기업공개와 관련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코세라믹스는 올해 ‘물적분할 5년룰’에서 벗어난다는 점 때문에 더 주목받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물적분할한 신설 자회사를 5년 내 상장하는 경우 강화된 상장심사 기준을 적용한다. 가뜩이나 상장이 까다로워진 환경에서 물적분할했다는 이유로 심사 기준이 강화되면 회사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물적분할 기업이 분할 5년 후 상장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잡고 있다.
실제 미코세라믹스는 미코에서 물적분할된 이후 2022년 코스닥시장 상장에 도전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373220) 상장으로 모회사 소액 주주들의 피해가 크다는 논란이 이어지자 당국이 강화된 상장 제도를 내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미코세라믹스가 물적분할된 지 5년이 지나면 이 기준이 완화된다. 미코세라믹스는 2020년 물적분할했다. 올해 물적분할에 따른 상장심사 강화 요건을 벗어날 수 있어 미코세라믹스의 재상장 추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회사 측 관계자는 “상장과 관련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는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장 상장을 위한 절차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미코세라믹스가 과거 상장 준비할 때 주관사로 선정했던 KB증권 역시 “재상장과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라고 했다.
사업이 성장하면서 자금 수요가 커졌는데 회사가 상장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과 관련, 업계에서는 미코세라믹스의 주요주주가 미코에서 코미코로 바뀐 것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코는 지난 2023년 자회사인 코미코에 미코세라믹스 지분 47.84%를 매각했다. 경영 효율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으로, 이에 따라 미코→코미코→미코세라믹스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가 이뤄졌다.
미코세라믹스가 상장하면 새로 주주가 된 코미코 입장에선 알짜 자회사가 인수 2년 만에 상장하는 셈이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연결 자회사 미코세라믹스의 상장 가능성을 고려하면 코미코 주가는 보수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중복상장과 이에 따른 모회사 주가 하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미코 내부 관계자는 “최대주주와 달리 회사 직원들과 주주들은 미코세라믹스의 상장을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중복 상장 이슈가 주가를 누르는 상황은 코미코의 모회사 미코도 마찬가지다. 미코의 또다른 자회사 미코파워 역시 상장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를 만드는 미코파워는 2021년 미코에서 물적분할해 설립된 회사로, 2027년까지 상장하겠다는 목표다.
미코그룹의 사례처럼 물적분할 이후 상장 이슈가 불거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주의해야 한다는 전문가 조언이 나온다. 2022년 당국이 물적분할 후 상장하는 사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앞서 물적분할을 단행한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096770)이 배터리 사업을 분할해 SK온을 출범시켰고, SK텔레콤과 HL만도(204320)가 각각 티맵모빌리티, 만도모빌리티솔루션즈를 물적분할했다. LG전자의 전기차 파워트레인 사업은 LG마그나로, HD현대의 로봇 사업은 현대로보틱스로 분할됐다.
다만 이들 대형주 상장에 대한 공포감은 내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HD현대로보틱스는 내년 5월, 티맵모빌리티와 LG마그나는 내년 10월과 12월, 만도모빌리티솔루션즈와 SK온은 2026년 9월과 10월 ‘5년 룰’이 지난다.
이와 관련해 김종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의 이상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기업들이 자발적인 합병을 통해 중복상장을 제거해야 한다”며 “대표적으로 메리츠금융,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 합병과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합병 사례가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