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5조원(2024년 11월 말 기준)의 기금 운용을 책임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한 무기로 ‘해외 틈새 부동산’을 점찍었다. 틈새 부동산은 데이터센터·기숙사·연구시설 등 비(非)전통적 부동산 섹터를 말한다. 국민연금은 틈새 부동산 공략 준비를 4년 전부터 해왔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최근 글로벌 틈새 부동산 시장에 약 2조3000억원을 투자했다. 영국 부동산 투자회사 롱 하버(Long Harbour)에 3억파운드(약 5322억원), 미국 부동산 투자회사 알마낙(Almanac)에 8억달러(약 1조1455억원), 호주 청년 임대주택 사업자 스케이프(Scape)에 7억호주달러(약 6332억 원) 등이다.

또 국민연금은 글로벌 자산운용사 지분도 인수(GP Stake)했다. ‘GP Stake’란 위탁 운용사(GP) 지분을 사들인 뒤 운용·성과보수를 주주로서 공유받는 형태의 투자를 말한다.

조선 DB

국민연금은 이번 투자 결과를 지난 23일 한글과 영문 보도자료까지 동원해 알렸다. 전 세계 수많은 자산에 투자하는 초대형 연기금이 고작 2조원대 부동산 투자 사실을 대외 홍보하는 건 낯선 풍경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비전통 부동산 시장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틈새 부동산 투자 준비를 4년 전 시작했다. 기금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해외 투자 비중을 늘리겠다는 중장기 자산배분 전략의 일환이었다. 다만 예전부터 투자해 온 오피스·호텔·쇼핑센터 등 전통 부동산 영역만으로는 수익률 극대화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상대적으로 투자가 덜 활발했던 틈새·비핵심(Niche & Non-Core) 부동산 섹터로 시선을 넓혔다.

세계 각국에서 건설하는 데이터센터와 셀프 스토리지(물품 보관 서비스), 학생 기숙사, 요양시설, 단독주택, 조립식 주택, 생명과학 연구시설, 삼림, 병원·진료시설 등이 틈새·비핵심 부동산 영역에 속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전통 부동산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고 경제 순환과 상관관계가 적어 리스크 분산 효과도 좋을 것으로 봤다”고 했다.

문제는 틈새·비핵심 섹터는 벤치마크(비교 지수)로 쓸 만한 지수가 없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기존 부동산 지수(FTSE EPRA Nareit Developed Indexes)는 전통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디자인된 지수였다. 벤치마크가 존재해야 특정 섹터에 대한 정의가 이뤄지고 시장 참여자의 접근성도 높아진다. 또 투자 후 성과 평가 역시 벤치마크를 토대로 한다.

국민연금은 2021년 말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그룹 자회사인 FTSE 러셀에 틈새 부동산 전용 지수 개발을 의뢰했다. 당시 런던 사무소에서 근무하던 김주성 책임운용역이 신규 지수 개발 논의를 주도했다. 이듬해 틈새·비핵심 부동산 섹터 투자를 위한 신규 지수(FTSE EPRA Nareit Developed Extended Opportunities RIC 6/45 Capped Index)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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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지수는 2022년 11월부터 FTSE 러셀의 표준 지수로 제공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영국·호주·벨기에·캐나다·싱가포르 등 12개국에 상장된 77개 종목을 편입하고 있다.

투자 근거를 확보한 국민연금은 신규 지수를 활용해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을 실행하기로 했다. 현재 투자 규모는 2조원대로 불어난 상태다. 작년 초에는 틈새 부동산 투자를 전담할 ‘부동산플랫폼투자팀’을 부동산투자실에 신설하고, 신규 지수 개발을 주도한 김주성 운용역을 팀장에 선임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수익률 극대화다. 2013년 4.19%였던 국민연금의 연간 기금운용 수익률은 10년 후인 2023년 역대 최고치인 13.59%까지 올라갔다. 해외주식과 대체투자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리고 있는 만큼 기대 수익률도 함께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P)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기를 6년 정도 늦출 수 있다.

서원주 기금운용본부장은 “틈새·비핵심 부동산 투자 기회를 적기에 확보하고, 투자 포트폴리오의 중장기 위험조정수익률을 제고할 것”이라며 “상장 부동산과 실물 부동산을 아우르는 폭넓은 투자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인수합병(M&A)·기업공개(IPO) 등 다양한 운용 전략을 실행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