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뉴스1

이 기사는 2025년 1월 17일 08시 12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상장폐지 목적의 공개매수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권익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판단해 칼을 뽑을 채비 중이다. 애초에 공개매수는 상장폐지를 전제로 등장한 제도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수년 새 공개매수를 통한 자발적 상장폐지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공시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니 전략적으로 공개매수를 활용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 과정에서 소수 주주가 피해를 본다는 게 금감원의 시각이다. 상장폐지 목적의 공개매수에선 지배주주가 공개매수 가격을 낮추려고 해 투자자 보호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연구 결과도 금감원 논리를 뒷받침한다. 다만 주된 공개매수 주체인 사모펀드 업계는 공개매수 자체가 주주 간 합의로 이뤄진다는 입장이다.

1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 금감원이 자발적 상장폐지 목적의 공개매수에서 문제라고 인식하는 건 ▲주당순자산보다 낮은 공개매수가(價) ▲공개매수에 대해 의견을 내지 않는 발행회사(공개매수 대상 회사) ▲공개매수 이후 거액 배당 등 세 가지다. 금감원 시각은 지배주주만 비싼 가격에 지분을 팔아치우는 대주주 프리미엄을 막기 위해 나섰던 금융위원회보다 한 발 더 들어간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4일 임원 회의를 주재하며 이와 관련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현재 공개매수가에 대한 규정은 없다. 공개매수자가 현 주가나 미래에 예상되는 주가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다른 주주가 응모하는 방식이다. 시장에 맡긴다는 뜻이다.

이렇다 보니 공개매수가 산출 근거는 늘 논란의 대상이 됐다. 통상 공개매수자는 공개매수 공고일이나 이사회 결의일 직전 영업일 또는 1·2·3개월 동안 가중산술평균 주가에 얼마를 할증·할인한 가격 정도만 제시한다. 글로벌 동종업계 기업 주가를 조사한 후 거기에 기업가치배수를 곱해 산출하는 공모가, 주가 또는 자산가치·수익가치를 법이 정한 비율로 계산하는 합병가액 등과 비교하면 규정이 헐렁한 것이다.

대개 공개매수자가 현 주가보다 공개매수가를 더 쳐주긴 한다. 하지만 여기에 납득하지 않아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는 주주가 있어도 축출할 수 있다. 코스피는 95%, 코스닥은 90%의 지분만 확보하면 되는 데다 주식의 포괄적 교환 등의 방법도 있어서다. 포괄적 교환이란 A사 주주의 주식을 가져오는 대신 B사 주식을 일정 비율로 나눠주는 제도다. 이때 B사는 대개 사모펀드의 투자목적회사로, 주식 대신 현금으로 대신 지급할 수도 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공개매수가의 공정성에 관해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제한돼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공개매수할 때 공시하는 신고서에 공개매수가의 근거를 상세히 기술하는 방안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9월 30일 이마트가 신세계건설에 대한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내건 조건이다. 공개매수가격은 이사회결의일을 기준으로 전일, 1개월, 2개월, 3개월 동안의 평균 주가에 할증돼 정해졌다./금융감독원

사모펀드 생각은 다르다. 공개매수가는 이론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주의 응모율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정해진다는 입장이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평균 순자산가치(PBR)가 1배가 안 돼 공개매수가가 주당순자산보다 낮은 것”이라며 “실무적으로 공개매수가에 대한 근거를 어떻게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발행회사의 소극적 태도를 지적한 것 역시 정보 공시 확대 차원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38조에 따르면 발행회사는 공개매수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공개매수에 찬성·중립·반대 등의 입장을 표현하라는 얘기다. 실제 모회사인 SBI홀딩스로부터 공개매수를 당한 SBI핀테크솔루션즈는 의견서를 통해 공개매수 가격을 평가하고, 모회사와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 상세히 서술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최근 3년 중 4건뿐이다. 그마저도 3건은 상장폐지 목적의 공개매수가 아닌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상대의 공개매수를 실패시키기 위한 의견서(에스엠(041510), 고려아연(010130), 영풍정밀(036560))였다. 자본시장법상 ‘공개매수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로만 돼 있는 탓이다.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에 나선다면 법의 취지를 살려 상장사가 의견을 적극 개진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방향이 될 전망이다.

금감원의 마지막 지적 사항은 폭탄 배당이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공개매수 후 배당 규모가 그 전에 비해 평균 24.5배 증가했다. 공개매수로 회사를 장악한 후 배당으로 현금을 빼가는 것이다. 그나마도 자산, 부채, 종업원 수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해 재무제표를 공시해야 하는 외부회계감사법인은 상장폐지 후에도 얼마나 배당했는지 추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금융당국이 파악하기 힘들다. 이 역시 모니터링 강화 등 개선 여지가 있다.

최근 3년간 공개매수에 관한 의견표명서를 공시한 상장사는 4곳이다./금융감독원

자본시장연구원의 최근 연구 결과도 금감원의 문제의식과 일맥상통한다. 자본연의 ‘M&A를 활용한 자발적 상장폐지 시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09~2024년 9월까지 있었던 51건의 공개매수 중 2022년 이후 공개매수 건수는 20건(39.2%)에 달한다.

문제는 공개매수가 상장폐지를 전제로 만든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연은 공개매수 취지에 대해 “지배권 이전·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 매수가 있을 때 소수 주주에게 보유 주식의 매도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자 만든 것”이라며 “매수자가 준수해야 하는 절차만 규정할 뿐 소수 주주에 대한 별도 보호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자본연은 일반적인 공개매수는 지배권 획득을 위해 공개매수 가격을 높게 책정하지만, 상장폐지 목적의 공개매수에서는 지배주주가 공개매수 가격을 낮춘다고 했다. 공개매수 대상 회사의 이사회가 지배주주 영향력 아래 있어 가격 협상을 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자본연은 짚었다. 또 자본연은 잠재적 제3자 매수자와의 경쟁도 없어 공개매수 가격이 공정하게 책정될 것으로 보장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자본연은 한국도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 시 상장폐지 관련 상세한 설명, 가격 산정을 위한 구체적 산식 등을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최근 개정된 합병 관련 규정과 같이 이사회 의견서 제출 및 외부 평가기관 선임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대책 마련 방향성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는 공개매수 과정에서 주주 보호가 미흡해 보이는 현상을 분석한 단계”라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