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증권이 중대사를 앞두고 장수(將帥)를 교체하지 않았다. 오익근 대표의 자리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대신증권의 가장 큰 숙제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허가다. 금융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기업금융(IB)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대신증권은 초대형 IB에 신청하기 위한 자본 요건을 맞추기 위해 사옥 매각까지 추진했다.
IB 외에도 대신증권은 부동산 사업 확장을 넘보고 있다. 이미 관련 조각투자업체는 인수한 상태다. 국내 최대 부동산 전문 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의 지분이 시장에 나오자 여기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신증권은 다시 업계 내 영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고, 최전선에 나선 인물이 오익근 대표다.
4일 대신증권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오 대표를 단독 대표 후보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오는 21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거쳐 연임이 확정될 전망이다. 이번에 연임이 확정되면 오 대표는 세 번째 임기를 부여받는다.
오 대표는 1963년생으로 1987년에 대신증권에 입사해 38년간 ‘대신맨’으로 일했다. 재무관리부장, 리스크관리본부장, 부사장을 거쳐 2020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2022년 연임에 성공해 2년의 임기를 받았다. 올해도 오 대표 선임안은 주총에서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요 증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창립 멤버인 최현만 회장이 나가면서 김미섭·허선호 부회장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출범시켰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정일문 사장에서 김성환 사장으로 교체됐고, KB증권 역시 박정림 사장에서 이홍구 사장으로 바뀌었다. 이 외에도 메리츠증권(최희문→장원재), 삼성증권(장석훈→박종문), 키움증권(황현순→엄주성) 등에서 연말연초 CEO 변동이 있었다.
수장이 바뀌지 않으면서 대신증권은 기존에 추진해 온 사업들을 연속성 있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건은 종투사 신청이다. 국내 증권사는 60개가 넘지만, 종투사는 이 중 9곳(미래에셋·NH·한국투자·삼성·하나·KB·메리츠·신한·키움)뿐이다. 신청 요건이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등으로 까다로워서다.
종투사로 지정되면 기업의 신용공여 한도가 100%에서 200%로 증가한다. 고객에게 대출을 더 많이 내줘 여기에 따른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종투사는 대형 증권사와 중소형 증권사를 가르는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대신증권은 이르면 다음 달 종투사 자격을 신청할 계획이다.
대신증권은 종투사 넘어 초대형 IB도 노리고 있다. 초대형 IB는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이 돼야 신청할 수 있다. 초대형 IB로 지정된 증권사는 5곳(미래에셋·NH·한국투자·삼성·KB)이다. 초대형 IB가 되면 자기자본의 2배 안에서 만기 1년의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증권사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확보한 총알로 증권사는 새로운 사업도 모색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신증권의 자기자본(별도기준)은 2조8500억원인데, 대신증권은 종투사와 초대형 IB에 신청하기 위한 자본 요건을 맞추기 위해 서울 중구에 있는 사옥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사옥 ‘대신 343′의 가치는 6500억~7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대신증권은 마스턴투자운용과 NH아문디자산운용을 유력한 원매자로 정하고 가격 등을 협상 중이다.
종투사와 초대형 IB 모두 금융위의 승인 사항이다. 업계에서는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로 대신증권이 곤욕을 치르긴 했지만, 당국 승인을 받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당초 예상보다 낮은 수위의 징계를 받으면서다.
금융감독원은 ‘라임펀드 판매사’ 대신증권의 CEO 양홍석 부회장에 대해 ‘문책경고’를 결정했는데, 금융위는 이보다 낮은 수위인 ‘주의적 경고’를 통보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징계는 ‘주의-주의적 경고-문책경고-직무정지-해임 권고’ 순으로 수위가 세진다. 문책경고 이상은 중징계로 분류된다. 양 부회장 징계안이 금감원에서 금융위로 넘어가면서 중징계에서 경징계로 바뀐 것이다.
대신증권은 추가 M&A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국내 최대 부동산 전문 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의 대주주가 지분 매각을 준비 중인데, 원매자로 대신증권이 거론되고 있다. 대신증권은 이지스자산운용의 지분 9.2%를 갖고 있다. 대신에프앤아이(3.1%)의 몫까지 고려하면 대신파이낸셜그룹의 지분은 12.3%다. 고(故) 김대영 창업주의 아내이자 대주주인 손화자 씨(12.4%)에 이은 2대 주주다.
대신파이낸셜그룹의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유명하다. 지난해 3월 대신파이낸셜그룹은 부동산 조각투자업체 ‘카사’를 인수했다. 당시 대신파이낸셜그룹은 인수 이유에 대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지스자산운용과 같은 금융회사의 최대주주가 되려면 금융당국의 승인이 필요한데, 여기서도 종투사·초대형 IB 심사와 같은 논리가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과거 CEO의 불공정거래로 금융당국의 눈 밖에 난 상상인그룹이 골든브릿지증권 인수를 추진할 당시 금융당국은 규정에 명시된 심사 기한인 60일을 넘겨 약 10개월 만에 허가를 내준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골든브릿지증권 노조는 금감원 앞에서 시위를 열고 “(당국은) 1년 동안 악의적인 잣대로 뒤지고 있음에도 어떠한 대주주 부적격 사유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적격성 심사 지연으로 수개월의 경영 공백 상태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신증권이 라임으로 경징계로 감경됐긴 하지만 여전히 금융당국 입장에선 미덥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증권의 새 사업을 좋게 볼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대주주의 엑시트는) 주주 간 논의 사항이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