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삼일·삼정·한영·안진 등 4대 회계법인이 리포트(보고서)를 앞다퉈 내고 있는 가운데 딜로이트 안진이 올해 들어 가장 많은 리포트를 발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회계법인은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과 개정세법을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 급증한 리포트 발간과 세미나 개최는 회계법인의 전문성을 외부에 알리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26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삼일PwC는 올 들어 이슈, 산업 등 37개의 리포트를 발간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12개를 낸 것과 비교해 3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삼일은 ‘미·중 무역분쟁의 또 다른 분야, 제약·바이오 산업’, ‘동남아시아 비즈니스 가이드북 베트남 편’, ‘주류 산업 보고서: 술 즐기는 시대’ 등 다양한 주제로 리포트를 발간했다. 이달 들어서는 한 주에 리포트를 3개씩 내기도 했다.
안진도 올해 57건의 리포트를 발간하며 선두를 차지했다. 1년 전 52건보다 5건 늘어난 규모다. ‘2025년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5대 과제’처럼 삼일과 비슷한 주제도 있었고, e스포츠 산업·우주 경제·스포츠 경기장 디지털 기술 등 다른 주제도 있었다. KPMG삼정도 같은 기간 14개에서 3개 많아진 17개의 리포트를 내놓았다. EY한영은 리포트를 외부에 공개하진 않지만, 발간이 전년 대비 늘었다고 밝혔다.
4대 회계법인이 관심 있게 들여다본 건 석유화학·자동차·투자은행(IB) 업계 등이었다. 이들 대부분 2~3년간 부진했으나 올해 들어 반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업종이다. 투자은행 업계의 경우 삼일과 한영은 1월에 2024년 글로벌 기업공개(IPO) 실적과 올해 전망 리포트를, 삼정과 안진은 각각 VC 투자 동향과 사모펀드 투자 현황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업계에서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 유사한 고민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회계법인끼리 리포트 아이템이 비슷하면 서로 따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부적으로 리포트 심도에 대해 고객사 보안을 고려해 조절해야 한다는 점이 신경쓰이는 부분”이라며 “객관적인 시각에서 업황이 안 좋다고 지적하는 것도 고객사가 기분 나빠할 수 있어 고민이 많다”고 했다.
세미나의 경우 리포트보다 더 주제가 겹쳤다. 빅4 모두 2~3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 정책 대응 전략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들 회계법인이 모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영향으로 급변하는 국제 통상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이 처한 어려움을 올해 핵심 먹거리로 삼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안진은 ‘통상&디지털 통합서비스 그룹’ 조직을 신설하며 대응을 강화했고, 삼일은 2024년 12월 관련 조직을 먼저 구축, 산업부 출신 강명수 센터장을 영입했다. 삼정도 트럼프 1기 행정부 이전부터 FTA 원산지 판정 시스템 구축 등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과 현지 법인 운영을 지원해 왔다고 설명했다. EY한영 역시 지난 2월 글로벌통상자문팀을 공식 출범시켰다.
다음으로 같았던 세미나 주제는 개정 세법이었다. 삼일을 제외한 세 곳 모두 2월에 하루 차이로 개정 세법 설명회를 열었다. 19일 한영, 20일 삼정, 21일 안진 순이었다.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을 비롯한 주요 개정 사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실무진이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이런 세미나는 매년 진행하는 만큼 세법 관련 컨설팅 역시 회계법인의 주된 사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들 회계법인이 이렇게 컨설팅에 집중하는 배경엔 부진한 업황이 있다. 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딜(거래) 일감이 대폭 줄어든 4대 회계법인은 신사업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나 인공지능(AI) 등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조직 구성 전후로 리포트를 내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식이다. 삼일만 해도 2024년 한 해 부동산헬스케어센터, 글로벌 IPO 전담팀·미국 상장기업 감사지원센터 등 센터급 조직을 잇달아 출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