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4월 들어 열흘도 안 돼 1조3000억원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월 한 달간 늘어난 가계대출(1조7992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지난 2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후 급증한 주택 거래가 시차를 두고 가계대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토허구역 해제 후 재지정까지 39일 동안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지역의 아파트 거래량은 3배 이상 늘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11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39조8744억원으로, 지난달 말(738조5511억원)과 비교해 1조3233억원 늘었다. 영업일 기준으로 9일간 가계대출이 1조원 넘게 증가한 것이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86조4588억원으로, 이달 들어 7783억원 증가했다. 11일 하루에만 주담대가 2000억원 이상 늘었는데, 일별 기준으로 살펴보면 주담대가 늘어나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는 모습이다. 신용대출도 늘었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02조1870억원으로, 지난달 말과 비교해 5807억원 증가했다. 미국발 상호 관세 충격에 국내외 주식을 ‘저가 매수’하려는 투자 수요가 몰린 영향이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ATM 기기 모습./뉴스1

5대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 가계대출은 2월 4조2000억원 급증 후, 3월 반짝 급감해 4000억원 느는 데 그쳤다. 금융회사는 통상 1분기(1~3월) 말인 3월 부실채권을 대규모로 상·매각하는데, 이 때문에 가계대출 잔액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5대 은행은 지난해 1분기엔 1조6079억원어치의 부실채권을 상각하거나 매각했다. 올해 1분기엔 부실채권 정리 규모가 더 클 전망이다.

문제는 4월부터다. 통상 대출 승인은 주택 매매계약 체결 후 한두 달의 시차를 두고 이뤄지기 때문이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토허구역 해제 발표 다음날인 2월 13일부터 재지정 전날인 3월 23일까지 규제 대상 지역 내 아파트 거래량은 353건으로 직전 같은 기간(1월 4일~2월 11일) 99건보다 약 3.6배 급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서울 아파트 거래는 4743건으로 전월 대비 46.7% 늘었다.

금융 당국은 4월 이후가 가계대출 관리의 ‘분수령’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지난 9일 가계대출 점검 회의에서 “가계대출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3월 부동산 규제 재시행 이전 활발히 이뤄진 주택 거래는 다소 시차를 두고 가계부채 통계에 반영되는 만큼 4월 이후가 가계대출 관리에 있어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금융 당국은 일별, 지역별 가계대출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세, 토허구역 재지정 후 풍선효과 등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다“며 ”매주 화요일 시중은행 실무진과 회의를 하는데, 은행 창구에서 느끼는 현장 분위기론 토허구역 재지정 후 현재까지 대출 수요가 크게 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