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상 사옥. /현대해상 제공

민간자격을 가진 놀이심리상담사가 발달지연 아동을 상대로 행한 놀이치료에 따른 비용은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민간자격자의 놀이치료는 법률상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셈이다. 발달지연 아동을 위한 치료는 언어·인지·미술·놀이·감각통합 등 다양한데, 미술·놀이치료는 국가자격증이 존재하지 않아 민간자격자가 치료를 대신하고 있다. 앞으로도 미술·놀이치료는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소송가액(소가)은 542만원이지만, 보험업계의 관심은 컸다. 보험사가 패소했다면, 보험업계의 보험금 부지급 논리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을 제기한 발달지연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 측은 법무부 차관 출신인 한부환 변호사를 내세웠고, 현대해상은 김앤장 변호사를 선임해 전관과 대형 로펌의 대결로까지 번졌다.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37부(이효진 부장판사)는 실손보험금 542만원을 지급해달라는 A씨의 보험금 청구를 기각하고, 현대해상의 보험금 지급의무는 없다고 전날 판결했다.

앞서 A씨는 2022년 9월 자녀가 발달지연 진단을 받자 한 병원의 심리발달센터에서 언어재활사로부터 언어치료를, 작업치료사로부터 감각통합치료를, 놀이심리상담사로부터 놀이치료를 각각 받았다. 이후 A씨는 현대해상에서 가입한 실손보험을 통해 비급여 의료비를 청구했다.

현대해상은 A씨에게 37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해 왔으나 2023년 6월부터 놀이치료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놀이치료는 법률상 의료행위인데, 치료를 행한 놀이심리상담사는 민간자격이라 의료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A씨는 국가에서 놀이치료 자격시험제도가 없는 상황이라, 이들에게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의료행위는 의료인 또는 보건의료 관계 법령에 따라 의료행위를 보조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사람만 시행할 수 있다”라며 “그 자격요건은 엄격하게 규정돼 있고 이를 함부로 확대 해석할 수 없다”라고 했다.

특히 “국가가 놀이치료사에 대한 자격시험제도를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놀이치료사에게 의료인 또는 의료행위를 보조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과 동일한 지위를 인정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실손의료보험 운영 행태에 대한 기자회견. /뉴스1

발달지연 보험금 논란은 코로나19 이후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외부활동을 하지 못한 아이들이 발달지연을 겪자, 안과·이비인후과·정형외과 등 여러 병원이 ‘아동발달 클리닉’과 같은 간판을 내걸고 치료를 권유해 보험금 청구 규모가 폭증한 것이다. 일부 병원들은 부모들에게 치료를 추천하며 ‘실손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니 부담은 크지 않다’고 영업했다.

발달지연 치료가 돈이 된다는 사실이 퍼지자 의료인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사무장 병원 등 불법의료행위까지 시작됐다. 발달지연이 아닌 아동에게 발달지연으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하는 등 서류를 조작도 생겨났다. 이러한 돈벌이를 설계해 주겠다며 매출액의 절반을 달라는 전문 브로커도 등장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실손보험이 의료법상 ‘의료행위’를 기준으로 보장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라며 “일부 무자격 의료행위로 인해 시기별 적정 치료에 대한 골든 타임을 놓치는 선의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발달지연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 측은 항소를 검토하고 있다. 송수림 대표는 “유사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있음에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 당혹스럽다”라며 “의사로부터 진단과 처방을 받아 치료를 한 것인데, 불법진료와 비교되는 것이 속상하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