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직원에게 타인의 금융거래 관련 정보를 요구하는 행위만으로도 최대 5년 이하 징역에 처하는 내용의 금융실명거래법 조항이 수정됐다. 이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 나온 지 3년 만이다. 앞으로 부정한 수단 등으로 타인의 금융거래 정보를 요구했을 때만 처벌받게 된다.
3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누구든지’ 금융회사 등에 종사하는 자에게 거래 정보 등의 제공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금융실명거래법 조항을 ‘누구든지 거짓 또는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정했다.
그동안 금융회사 직원에게 타인의 계좌번호 등 금융거래 관련 정보를 요구하는 행위만으로 처벌할 수 있었으나 이를 거짓이나 부정한 수단으로 거래 정보를 요구하는 행위로 개정한 것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부는 이번 법 개정에 대해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거짓 또는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거래 정보 등을 요구하는 행위에 한정해 이를 금지하고 위반 시 처벌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지난 2022년 2월 ‘누구든지 금융회사 등에 종사하는 자에게 거래 정보 등의 제공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금융실명법 4조 1항 등이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내용의 위헌제청 심판에서 재판관 8대1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당시 “금융거래 정보의 제공 요구 행위 자체만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최소침해성의 원칙에 위반된다”며 “금융거래 정보 요구를 하게 된 사유나 행위의 태양, 요구한 거래 정보의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일반 국민이 거래 정보의 제공을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할 때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타인의 금융거래 정보를 묻는 것이 위법하더라도 단순히 그 행위만으로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이 과도하다는 취지다. 헌재 위헌 결정 후 3년 만에 법 개정이 완료됐다. 헌재 결정으로 해당 조항은 사문화됐으나, 정부가 법 개정 작업을 최근에야 마친 것이다.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 소송은 A씨가 은행원에게 다른 사람 명의의 계좌번호 제공을 요구한 혐의로 약식 기소되면서 시작됐다. A씨는 본인의 형사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에 해당 법 조항을 위반할 때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이를 받아들인 재판부는 “어떤 이유에서건 금융기관에서 직원에게 타인의 계좌번호와 같은 금융 거래 정보를 알려달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범죄화하는 것은 타인의 사생활 비밀의 유지권이 침해되는 정도와의 균형을 상실한 것”이라며 헌재에 심판을 요청했다.
당시 반대 의견을 낸 재판관은 “정보제공을 요구한 자의 죄질이 정보를 제공한 자의 죄질보다 나쁜 경우가 있다”며 “이를 고려하면 거래 정보 등의 제공 요구 행위를 아예 처벌하지 않거나 금융 종사자보다 낮은 법정형을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불균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