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직’을 걸고 거부권 행사에 반대한다고 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언론 노출을 급격히 늘리고 있습니다. 오는 4월 5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이 원장에게 주어진 기간은 단 2주.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야만 하는 당위성을 거듭 설명하기 위한 것인데, 산적한 현안에도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현안에 지나치게 치우쳐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원장은 26일 오전 8시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지난 19일 금감원 본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지 일주일만입니다. 다음 주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합니다. 이 외에도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 방송 출연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원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거듭 “정부가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 주식·외환시장이 같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만약 거부권을 행사하면 진짜로 직을 던질 거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번 주, 다음 주가 남았다”며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에 자신이 만든 자료를 전달해 설득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부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시장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2주 안에 이를 뒤집어 보겠다는 것이죠.
금융위는 즉각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이 원장의 발언과 관련해 “소관부처인 법무부 외 여러 관계 기관의 의견을 들어 대통령 권한대행이 최종 결정할 부분이다”라며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기 2시간 전 이 원장이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관례상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통상 장관인 금융위원장이 언론에 메시지를 낼 땐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차관급인 금감원장은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는 게 관례입니다. 그럼에도 이 원장은 인터뷰를 강행한 셈이죠.
논란의 시작은 2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원장은 지난 13일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직을 걸고 반대하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여권의 십자포화가 쏟아지자, 이 원장은 일주일 전 기자간담회를 열어 출입 기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곤 “최종 결정권이 없다는 점에서는 다 원 오브 뎀(One of them)이고, 다 N분의 1의 의견을 내는 것인데, 금감원만 의견을 내라 마라 이런 것들은 솔직히 말하면 그 자체가 월권 아닌가”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언론을 입장 표명의 창구로 활용할 순 있으나, 출연 빈도를 높이고 발언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한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 원장의 발언 수위가 높아진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부터입니다. 이 원장은 지난해 12월 말 보험사 인수가 달린 우리금융지주의 경영실태평가와 관련한 언급을 하며 ‘매운맛’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그는 우리금융 검사 결과 발표를 미룬 이유에 대해 “더 매운 맛을 보여주기 위한 취지”라고 했습니다.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했을 때 신중한 발언이 어느 때보다 중요함에도 발언의 수위를 높인 것은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을 우려해서란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윤석열 사단’의 막내 검사로 알려진 이 원장은 취임 후 내내 실세 원장으로 불렸습니다. 그런 그가 탄핵 정국에 들어서자 더 강한 발언으로 기강을 잡는 것이란 얘기죠. 일각에선 ‘정치권 입문설’도 돕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을 빌미로 사퇴한 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손을 잡고 정치권에 발을 들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오나, 현실화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