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의 부실채권이 14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이 늘어난 영향이다. 지주 산하 은행들이 지난해에만 부실채권을 5조원 넘게 장부에서 털어냈으나, 올해 들어 연체율 상승세는 더 가팔라지고 있다. 오는 9월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 조치가 종료되면 연체율은 더 치솟을 전망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 총액은 13조6470억원으로 2023년 말 10조6700억원 대비 28% 증가했다. 4대 금융지주의 고정이하여신이 2021년 6조439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고정이하여신은 3개월 이상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이 연체된 부실채권(NPL)을 의미한다. 대출은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로 구분되는데, 금융 회사들은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로 분류된 대출은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간주해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리해 관리한다. 금융지주별로는 KB금융의 고정이하여신이 5조302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한금융(3조5620억원), 하나금융(2조5720억원), 우리금융(2조2110억원) 순이다.
총여신에서 고정이하여신이 차지하는 비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KB금융은 2021년과 2022년 말 0.7%였던 고정이하여신비율이 지난해 말 1.1%까지 올랐다. 신한금융은 0.8%, 하나금융 0.62%, 우리금융 0.57%를 기록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이 1% 안팎이라 안정적인 수준이긴 하나,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상황은 올해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경기 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개인과 기업의 채무 상환능력이 약화하면서 연체율이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국내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0.52%로,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 조치 종료에 따른 파장도 상당할 수 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코로나19 대출 만기 연장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금융 소비자는 28만6100명으로, 대출 잔액은 57조9200억원이다. 대출 만기가 종료되면 원금을 즉각 상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연체가 발생할 수 있다.
은행 등 금융회사는 올해도 연체율 관리를 위해 상당한 부실채권을 털어낼 것으로 보인다. 은행은 고정이하여신 중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는 부실채권은 장부에서 지워버리거나(상각)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매각) 식으로 처리한다. 4대 금융지주 산하 은행 4곳(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지난해 연간 상·매각한 부실채권은 총 5조2996억원으로, 이는 전년 대비 30% 늘어난 수준이다. 4대 은행의 연간 부실채권 상·매각 규모가 5조원을 넘은 건 처음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분기부터 연체율 비상이란 말이 나온다”며 “매 분기 말 부실채권을 상·매각하고 있음에도 연체율 관리가 쉽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