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사 사옥 전경.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성화재, KB손해보험, 현대해상, 흥국화재. /각 사 제공

대형 보험사와 중소형 보험사의 실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대형사는 사상 최고 실적을 낸 반면 중소형사는 해마다 이익이 줄고 있다.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도입과 엄격해진 해지율 가정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대형 손해보험사 5곳은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냈다. 삼성화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조768억원으로 전년보다 14% 증가했다. 같은 기간 DB손해보험은 15.3% 증가한 1조7722억원, 메리츠화재는 9.2% 증가한 1조7105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현대해상은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33.4% 증가하며 1조원을 넘겼다.

반면 중소형사인 흥국화재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1165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전년(2955억원)보다 60.6% 줄었다. 농협손해보험의 당기순이익은 2022년 1147억원, 2023년 1133억원, 지난해 1036억원으로 줄고 있다.

실적 차이가 커진 이유 중 하나는 새 회계제도(IFRS17)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IFRS17에서 수익의 핵심은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이다. CSM은 부채인데, 일정 시점마다 상각돼 수익이 된다. 한 상품이 10년 동안 100억원의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면, 매년 10억원이 보험사의 수익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러한 CSM 상각이익은 CSM이 많을수록 커지고, 수익(보험손익)으로 직결된다. 보험사들이 장기인보험과 같이 CSM에 유리한 상품을 집중 판매하려는 이유다.

이 때문에 IFRS17 도입 당시 절대적인 보유 계약 수가 많고 우량 계약이 많은 대형 보험사의 순이익이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실제 삼성화재의 CSM 상각이익은 2023년 1조5390억원에서 지난해 1조6120억원으로 늘었는데, 신계약 상각이익은 같은 기간 850억원에서 480억원으로 줄었다. 이미 보유한 계약의 상각이익이 1조4800억원에서 1조5640억원으로 늘면서 전체 보험손익이 증가한 것이다. 수익성 기여도가 신계약보다 기존 계약에 더 많았다는 뜻이다.

금융위원회 전경. /뉴스1

반면 중소형 보험사는 CSM에 유리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중소형 보험사는 대형 보험사와 경쟁하기 위해 더 저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품을 주로 판매했다. 특히 무·저해지 보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 무·저해지 보험은 보험료가 저렴하지만, 계약 해지 시 돌려주는 해약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상품을 뜻한다.

그런데 금융 당국이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을 보수적으로 가정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가이드라인대로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을 낮게 설정하면 CSM이 줄어든다. 대형 보험사도 무·저해지 보험 비중이 상당했으나, 중소형 보험사보다는 영향이 덜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보험사는 사이즈가 작은 계약을 주로 보유하고 있는데, 계리적 가정(손해율, 해지율 등)이 변경되면서 특히 중소형 손해보험사의 손실이 커졌다”라며 “대형 보험사는 포트폴리오가 좋기 때문에 일정 부분에서 영향을 받아도 다른 쪽에서 수익이 나는 등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다”라고 했다.

앞으로 대형 보험사와 중소형 보험사의 실적 차이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모든 보험사가 IFRS17 도입 전·후로 CSM에 유리한 상품을 집중 판매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자본력·영업력과 브랜드를 갖춘 대형 보험사로 실적이 쏠리는 현상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말 원수보험료(보험사가 받는 보험료) 기준 대형 5개 손해보험사의 시장점유율은 84.2%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