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본사를 허브로 삼아 아시아 금융을 연결하겠습니다. 지금 한국인이 해외에서 쓰는 우리의 간편결제 서비스를 아시아 권역으로 확대해야죠. 국적에 상관없이 GLN 이용자라면 여러 나라에서 지갑 없이도 편리하게 소비할 수 있는 여행 문화를 구축하는 게 목표입니다.”
해외 간편결제 서비스 GLN을 운영하는 김경호(55) 대표이사는 “최종 사업 모델은 아시아·태평양 권역에서 동등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G2G(Global to Global)”라며 이렇게 말했다.
GLN은 한국을 비롯해 태국·대만·괌 등 전 세계 10개 국가 및 지역에서 환전 없는 국내 계좌 직접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기업이다. 주요 서비스는 QR결제로 해외 가맹점에 설치된 QR코드를 인식하는 방법으로 현금이나 카드 없이 결제하는 방식이다. 특히 QR결제가 보편화된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선제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알뜰 해외여행족 사이에선 해외 결제 수수료를 줄이는 방법으로 GLN에 대한 입소문이 났다. 최근에는 국제 송금 서비스를 시작해 사업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지난 2016년 하나은행 내 사업부서로 시작한 GLN은 2021년 7월, 하나은행 자회사로 독립했다. 독립 후 카카오페이, KB 디지털 플랫폼 펀드 등에서 투자금을 받으며 회사의 몸집을 키웠다. 국내외 여러 금융사와 맺은 제휴로 이용자도 빠르게 늘어났다. GLN은 올해 2월, 토스와 제휴를 맺고 토스 애플리케이션(앱) 안에서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거래 금액이 30억원대(지난해 12월 기준)에서 200억원대(올해 8월 기준)로 수직 상승했다. 인력 역시 분사 직후 30여명으로 시작해 현재 70여명으로 불었다.
김 대표는 하나은행 임원 시절부터 GLN 사업을 구상하고 첫 삽을 뜬 멤버였다. 그는 지난 3월, GLN 대표로 취임하며 스타트업 경영인으로 탈바꿈했다. 1994년 입행해 30년 가까이 넥타이·구두와 한 몸이었던 김 대표는 이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6개월 차 신임 리더에게 대표 취임 후 소감을 묻자 그는 “스타트업에 뛰어들어 직접 성취를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라고 밝게 답했다. 앞으로의 사업 전략을 논할 땐 목소리를 가다듬고 진중하게 말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달 22일, 김 대표와 서울 강남구 GLN 사무실에서 만나 그의 경영 철학과 회사의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6개월 전 처음으로 기업 대표 자리에 올랐다. 대표 취임 후 경영에 중점을 둔 분야가 있다면.
“GLN을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로 만들겠다는 목표부터 세웠다. 신용카드에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있다면 간편결제에서 GLN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비자카드를 들고 다니면 어느 나라를 가도 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 현재 그런 역할을 하는 간편결제 서비스는 없다. 나라마다 흩어져 있는 금융 시장을 연결하는 간편결제 서비스로 우뚝 서고 싶다. 한국인이 일본에서, 일본인이 태국에서, 태국인이 괌에서 자유로이 GLN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최근 들어 해외송금 서비스를 새로 시작했다.
“맞다. 올해 8월부터 해외송금 서비스를 시작했다. GLN은 하나은행 부서였던 사업 초기 때부터 해외 QR결제와 해외 QR출금(ATM) 서비스를 동시에 출시했다. 여기에 올해 해외송금이라는 3번째 서비스를 개척한 것이다. 사업을 확장한 이유는 사업의 안정성 때문이다. 2가지 사업에만 몰두하기보다는 3가지 사업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더 안전할 것으로 판단했다. 누구도 코로나19 확산을 예상하지 못했듯이, 급작스러운 외부 환경 변화로 해외결제 이용자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런 위험 상황을 염두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현재 3가지 주요 사업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주요 수입원은 수수료다. 비자·마스터카드 같이 해외 가맹점과 카드사를 연결해 주는 글로벌 네트워크 브랜드가 수수료를 받듯이 GLN도 결제·출금·송금 수수료를 받는다. 대신 우리는 수수료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해외결제 수수료율이 1% 정도라면, GLN은 0.3% 수준이다. 현물 카드를 발급하는 것도 아니고 후불 결제도 아니기 때문에 담보도 필요하지 않아 수수료를 낮게 책정할 수 있었다.”
—수수료가 낮다면 수입 규모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지 않나.
“수수료가 낮기 때문에 거래 자체가 많아야 한다. 거래에 비례해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토스 등 이용자를 흡수할 수 있는 금융 파트너들과 손을 잡는 전략을 취한다. 실제로 지난 2월 토스와 제휴를 맺었는데,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누적 거래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00% 성장했다.”
—2025년 손익분기점을 돌파한다는 자체 목표를 세웠다. 목표를 위해 세운 전략이 있다면.
“QR결제·QR출금·해외송금, 3각 편대가 갖춰졌다. 지금은 거래 자체를 늘릴 수 있도록 결제 가맹점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사이판·괌은 면세점과 백화점만 QR결제 가맹점이다. 이제는 한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이 주로 찾는 지역의 소형 점포들을 가맹점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일본 역시 지금은 가맹점 수가 많지 않다. 현재 일본의 주요 금융사와 접촉하며 내년 초엔 가맹점을 대폭 늘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소액 결제 자체를 많이 늘리는 게 우리의 커다란 목표다.”
—국내는 신용카드 결제가 활성화됐다. 반면 중국과 동남아는 QR결제가 보편화됐다. 국가마다 경제 문화 차이가 GLN의 사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나라마다 금융 환경이 다르니 공략법도 달라야 한다. 현재 동남아는 현금 이용을 줄이는 추세다. 그러나 카드결제기 보급률은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QR결제가 먼저 퍼졌고 GLN 역시 QR결제로 동남아 시장을 공략했다. 다만 한국의 카드, 동남아의 QR결제, 유럽의 탭 결제 등 모든 방식을 궁극적으로 지원하고 이용자에게 지역의 금융 환경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제 측면에서도 환경이 제각각이다. 현재 규제가 엄격한 편인 일본과 베트남이 숙제다. 우회로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공법으로 진출하려고 노력 중이다.”
—올해 하반기나 내년을 목표로 출시 준비 중인 서비스나 상품이 있는가.
“GLN을 여행 플랫폼으로 발돋움하려고 구상하고 있다. 보통 GLN 이용자는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해외로 오가는 사람이다. 여행객 소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숙박과 항공권이다. GLN 이용자들이 GLN 앱에서 숙박과 항공권을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중개하는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이용자 사이에서 그런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들려온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많은 핀테크 회사의 목표가 상장이듯이 ‘우리도 상장해서 국제 금융의 한 축으로 커보자’는 열망이 있다. 한편으론 전체 은행이 쓰는 간편결제의 글로벌 허브 기능을 한국에 만들자는 목표가 있다. 사실 해외에서 시도한다면 더욱 쉬울 것이다. 한국은 금융 허브를 만들어 본 적이 없고 규제 미비 등 준비가 덜 된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목표를 이뤄내고 싶다. 회사는 작지만 꿈은 크다.”
☞김경호 GLN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 학사 ▲서울대 경영학 석사 ▲하나은행 미래금융사업부장 ▲하나은행 GLN 플랫폼 글로벌 디지털 센터장 ▲하나은행 미래금융사업본부장 ▲하나은행 디지털리테일그룹 본부장 ▲GLN C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