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됐던 인천 지역의 경찰이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금융감독원에 공문을 보내 전세사기 악용 가능성이 있는 전세대출의 문제점을 검사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금감원은 당시 전세사기 대출 문제점을 검사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사기 피해자를 줄일 수 있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금융권에서 나온다.
13일 금융권과 경찰 등에 따르면 인천 계양경찰서는 2019년 12월 금감원에 공문을 보내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취급 검사를 요청했다. 당시 경찰은 금감원 측에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손실 위험이 적어 은행이 서류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고 대출을 내주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전세대출 사기의 가장 큰 문제라고 경찰 측은 진단했다.
당시 경찰은 이런 점을 악용한 전세대출 사기가 인천에서 여러 건 발생하자 공문을 보내고 금감원에 심각성을 알린 것이다. 수사를 담당했던 계양경찰서 관계자는 “은행이 전세대출을 실행할 때 대출 서류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거나 사후 점검을 하지 않아 이를 악용한 전세대출 사기가 있었다”며 “금감원에서 전세대출 문제점을 파악하고 은행에 대해 검사를 진행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고 했다.
금감원도 전세사기에 대한 문제점을 검토하긴 했지만, 경찰의 요청대로 검사를 진행하진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2019년부터 파생결합펀드(DLF)·라임펀드 등 사모펀드 사태가 잇달아 터지면서 금감원 업무가 사태 조사에 집중됐다고 한다.
DLF는 당시 영국과 독일의 국채 금리가 크게 하락하지 않으면 수익이 나는 상품이다. 2019년 8월 이 국가들의 국채 금리가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이 대규모 원금 손실을 입었다. 이른바 사모펀드 사태의 시작이다. 당시 은행은 DLF를 불완전판매한 것으로 드러났고, 금감원은 검사 끝에 같은 해 12월 투자자에게 손실금의 40~80%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같은 해 10월 라임자산운용이 펀드 177개에 대해 환매 중단을 선언하면서 1조원대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라임사태’까지 터지면서 금감원의 업무가 마비 상태였다는 것이 당시 직원들의 설명이다.
전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해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조사나 징계 수위 결정이 상당히 지연됐는데, 이후 금융 당국의 사모펀드 전수조사 방침으로 인력난이 가중됐다”며 “당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사태가 한창인데 갑자기 금감원 독립을 주장했던 것도 이런 인력과 예산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당시 금감원이 소수 인력이라도 배치해 전세대출 사기에 대해 점검했다면 사기 피해자 규모가 줄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시가 지난 9일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 규모는 총 2969호, 예상 임대차 보증금 합계액은 2002억원에 달했다. 피해자의 약 63%가 40대 이하의 사회적 경험이 짧은 청년들이었다. 이번 전세사기로 인천에서만 4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9년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때라 전세대출 부실 가능성을 낮게 봐 조사에 소홀했을 가능성도 금융 당국 안팎에서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 잡기를 위한 다주택자 옥죄기 일색이었기 때문에 전세대출 사기는 크게 부각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