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

‘허리띠를 졸라매 경기 침체를 불사하더라도 재정 건전성을 지키자’

‘성장만 한다면 그깟 부채는 한 번에 다 갚고도 남는다’

증권가에서는 이 두 주장 중 후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 의도를 더 잘 설명하는 문장이라고 보고 있다. 국가의 장기적 과제를 진득하게 바라보고 해결하기보단 화끈한 베팅에 나서는 인물이란 얘기다.

미국 증시가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이를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지금 경기 침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계획한 결과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KB증권은 그 근거를 파산까지 경험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사에서 찾았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27일 “트럼프 대통령의 인생은 부채로 망했다가 더 큰 부채로 성공한 인생”이라며 “지금 미국의 재정 상태는 그의 사업이 파산했던 1990년대와 닮았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 부동산 재벌이었다.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트럼프는 가업인 부동산 개발업을 물려받았다.

1978년 트럼프는 아버지로부터 100만달러를 지원받아 코모도르 호텔을 매입했다. 이후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재건축했다. 트럼프 타워, 카지노 등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당시 그는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 부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곧 굴곡이 시작됐다. 과도한 부채에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다. 트럼프는 1988년 2억4500만달러를 빌려 이스턴 에어셔틀의 항공기와 항로를 인수했다. 뉴욕과 보스턴, 워싱턴DC를 오갔지만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고 2년 만에 이자도 지급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결국 채권자에게 소유권을 넘겼다.

1991년엔 그의 타지마할 카지노 호텔이 개장 1년 만에 파산을 신청했다. 이 외에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최소 4번의 부도를 경험했고, 한때 재산이 마이너스(-)로 전환된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가 재기할 수 있었던 건 더 큰 부채 덕이었다. 트럼프는 채권단을 상대로 부채 조정과 주식 전환 등을 제안했다. ‘당장 자금을 회수하면 다 같이 망하니 더 빌려주면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는 식이다. 이 연구원은 “(트럼프는) 협박에 가까운 협상 기술로 위기를 타개했다”며 “더 큰 부채가 그를 갑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를 분석하고 나선 이유는 현재 미국의 재정 상태가 과거 트럼프의 사업이 연이어 도산했던 1990년대와 닮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연구원은 “트럼프의 해결책은 레버리지를 통한 성장”이라며 “그가 원하는 건 경기 침체를 불사한 재정 건전성이 아닌 강력한 성장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서 그가 언급한 레버리지란 ‘감세’다.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를 위해 협상 수단으로 관세를 내세웠다면 시장의 예상보다 강력한 정책이 나올 전망이다. 이 연구원은 “‘너 돈 있어?’라고 직접 묻기보다 먼저 몇 대 때리고 돈을 요구하면 더 쉽게 뺏을 수 있다”며 “어차피 관세가 협상 수단이라면 관련 산업 피해도 너무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감세로 인한 재정 펑크를 메울 방법 중 또 하나는 방위비다. 트럼프 대통령가 타깃으로 하는 방위비 협상 대상국은 유럽 주요국과 한국, 대만, 일본이다. 이 연구원은 “이런 우려 탓에 중국, 한국, 유럽의 (증시) 강세가 주춤한 것”이라며 “모든 것은 감세를 위한 수단이라는, 끝이 있는 혼란”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앞뒤 재지 않고 마구 칼을 휘두를 순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글로벌 무역 체계를 다시 짜겠다는 미국의 의지는 강하지만, 의지와 실행력은 다른 문제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나라에 (상호관세) 면제를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관세 부과에 예외가 없을 거라는 기존 입장과는 다르다”며 “실제로 예외를 인정받는 사례가 나오면 시장은 ‘예외는 없을 것’이라는 발언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이었다는 걸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해외 의존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취임 초기와 같은 독단적인 태도는 유지하기 힘들 전망이다. 직전 조 바이든 정부는 동맹국과 규합해 중국을 압박했지만 트럼프 정부는 다르다. 미국보다 중국에 경제 의존도가 높아지는 동맹국을 신뢰하지 않는데, 이 점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이 과정에서 오히려 미국이 다른 나라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미국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모든 원자재를 스스로 조달하고 모든 제품을 자체 제조하겠다는 목표가 쉽게 달성하기 어렵다는 걸 느끼면서 시장은 오히려 안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